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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향기] 때묻지 않아 더 매력적인… '미지의 와인 강국' 포르투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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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와이너리를 걷다

유럽 서남부 끝자락에서 달콤함을 맛보다

해질녘 포르투에서 '포트와인' 한 잔… 달콤한 로맨스가 시작된다

맛에 취하고 멋에 반하고… 고성 품은 도루밸리 와이너리




영화 속의 아름다운 배경이나 좋아하는 인물의 고향을 찾아 여행을 떠나듯이 와인의 매력에 이끌려 여행을 떠날 때가 있다. 유럽 서남쪽 끝자락의 포르투갈은 영화화된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나 축구 선수 호날두의 고향으로도 시선을 끌지만, 포트와인을 비롯한 다채로운 와인으로도 여행자를 불러 모은다. 한국보다 조금 작은 9만2090㎢의 국토 전역에서 저마다 개성 넘치는 와인이 탄생한다. 사라져 가는 옛날 방식대로 포도를 밟으며 으깨서 와인을 만들거나, 이제는 일부 지역에서 소량만 사용하는 고전적인 시멘트 발효조를 사용하는 등 전통적인 모습도 남아 있다. 무엇보다도 온난한 기후와 밝고 따뜻한 사람들 덕분에 여정의 걸음걸음이 가뿐하고 즐겁다.


브랜디를 첨가한 포트와인의 시초

여행의 테마를 와인으로 잡았다면 북부의 항구도시 포르투(Porto)에서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17세기 무렵부터 이곳을 통해 영국으로 와인이 수출되면서 포트와인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운송 중 와인이 변질되지 않도록 브랜디를 넣어 선적한 것이 시초인데, 이후에 발효 중간에 브랜디를 첨가해 잔당을 남기고 알코올 함량을 높이는 방식으로 발전했죠.” 안내를 위해 나온 포르투갈 와인협회(Wines of Portugal)의 미겔(Miguel)이 자세히 설명한다.

포트는 달콤하고 도수가 높아서 디저트 와인으로 애용되고, 장기 보관이 가능해 오래 간직했다가 특별한 날에 마신다. 아기가 태어난 기념으로 포트와인을 구입했다가 성년이 됐을 때 축배를 들기도 한다.

포르투 중심부의 클레리구스(Clrigos) 탑에 올라서니 포르투 시내와 도루(Douro)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도루강을 따라 북동쪽으로 약 100㎞ 떨어진 도루 밸리(Douro Valley)가 포트와인의 고향이다.

포도는 도루 계곡에서 자라 발효된 뒤 포르투의 항구나 강 너머 이웃 도시 빌라 노바 드 가이아(Vila Nova de Gaia)에서 숙성되고 병입된다. 줄여서 ‘가이아’라고도 부르는 빌라 노바 드 가이아에는 테일러(Taylor’s)나 샌드맨(Sandeman) 같이 유명한 와이너리들이 있어서 직접 방문해 와인을 시음하고 저장고를 둘러볼 수도 있다.

계단식 포도밭의 압도적인 풍광 도루 밸리

장대한 포도밭 풍광을 직접 보고 싶어서 도루 밸리로 향했다. 차로 50분쯤 달리자 도루 강 양옆으로 가파르게 솟아오른 계단식 포도밭의 압도적인 풍광이 시작된다.


“도루 밸리 생산자들은 편암과 화강암으로 이뤄진 산비탈을 개간해 수십만 개의 계단식 밭을 일군 뒤 포도나무를 심고 키워왔어요. 경사가 워낙 가팔라서 지금도 기계가 진입할 수 없는 곳이 많고 덕분에 인간의 손길로 가꾸고 수확한 포도로 귀한 와인이 만들어진답니다.” 미겔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도착한 와이너리는 1842년 설립 이후 5대째 가족 경영을 이어오고 있는 니에푸르트(Niepoort)다.

닐 베게트의 저서 《죽기 전에 꼭 마셔봐야 할 와인 1001》에 다수의 와인이 소개된 탁월한 포트 생산자다. 양조 시설을 둘러보면서 나무통에서 숙성되고 있는 포트와인들을 뽑아 골고루 시음하다 보니 다양한 종류와 양조 방식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소유주의 개인 저장고에는 한 세기를 훌쩍 넘은 역사를 증명하듯 올드 빈티지 포트와인이 가득하다. 그중엔 가족의 생년(生年) 빈티지 포트들도 있다. 빈티지 포트란 특정한 해에 수확한 포도로만 만든 와인인데, 그중에서도 가족이 태어난 해의 것이니 특별히 소중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니에푸르트에서 약 30㎞ 떨어진 곳에 있는 와이너리 라브라도레스 드 페이토리아(Lavradores de Feitoria)는 15세기의 고성인 팔라시우 드 상 마테우스를 소유한 곳이다.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찾아와 저택, 가구, 수집품, 고서적이 고스란히 간직된 이곳을 둘러본다. 대표적인 와인은 포트가 아니라 드라이 레드 와인이다. 포르투갈에서는 250여 종의 포도 품종으로 다양한 와인을 만드는데 레드 와인의 품질은 이탈리아나 프랑스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라브라도레스 드 페이토리아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이들은 동화 속처럼 예쁘게 가꾼 정원에서 와인 시음회나 음악회를 종종 연다. 그런 분위기에서라면 와인의 맛은 더 우아하게 느껴지리라.


달콤한 모스카텔부터 우아한 드라이 레드까지

도루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 세투발(Setubal)과 알랭테주(Alentejo) 지역이 나온다. 세투발은 모스카텔 품종으로 약발포성 와인이나 강화 와인을 만드는 곳이다. 한국에서 인기 많은 이탈리아의 모스카토와 같은 종류의 품종이어서 왠지 반갑다. 달콤하고 시원한 와인을 맛보지 않고 지나칠 수 없어서 세투발 지역 와인 조합인 페고앵쉬에 들렀다. 포도밭을 거닐며 직접 포도송이를 만져보고 달콤한 열매의 맛도 보니 밭이야말로 와인을 이해하기 가장 좋은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

포르투갈 여행의 마지막을 채운 곳은 알랭테주에 있는 와이너리 도나 마리아 훌리오 바스토스(Dona Maria Julio Bastos)다. 야자수가 늘어선 정원 양옆으로 붉은 지붕이 솟은 저택이 마주 본 모습이 아름다워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18세기 초반에 포르투갈의 국왕 주앙 5세(1689~1750)가 사랑한 여인 도나 마리아(Dona Maria)를 위해 지은 저택입니다.”


마중 나온 안내인과 함께 포르투갈 전통 타일 장식이 돋보이는 예배당과 고대 로마시대의 암포라가 가득한 저장고를 지나 안쪽에 숨어 있는 정원으로 향했다. 수영장만 한 크기의 분수대 같은 건축물이 눈을 사로잡는다. “저택을 지을 때 건축된 석조 인공 호수와 폭포입니다. 중앙의 흰 대리석 조각상은 삼지창을 든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죠.

지금은 물을 가두었지만 예전에는 폭포처럼 물이 흐르게 하여 정원의 관개수로 썼습니다.” 개인 저택에 있는 인공호수와 폭포라니 그 위용이 대단하다.

전통식으로 포도를 발로 밟아 와인 제조

도나 마리아 훌리오 바스토스에서는 150년간 뛰어난 품질의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소유주인 훌리오 바스토스가 직접 나와서 와인이 양조되는 장소로 안내했다. 로마 시대 공중목욕탕을 연상케 할 정 도로 고전적인 석조 욕조들이 늘어선 모습이 여느 와이너리와는 다르다.

이곳의 대표 와인들은 옛날 방식대로 석조통에 포도를 넣고 여럿이 발로 밟아 으깨면서 만든다고 한다. 발효 과정도 고전적인 시멘트 발효조에서 이뤄진다. 소량의 시멘트 발효조로 특정한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는 있지만, 이렇게 넓은 공간에 대규모로 조성해 본격적으로 쓰는 곳은 드물다. 시멘트 발효조는 외부 온도 변화의 전도율이 낮아서 와인을 안정적으로 발효할 수 있다고 한다.

그날 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 저택의 고풍스러운 식당에서 와인에 요리를 곁들였다. 여러 와인을 마신 후 마지막에 나온 것은 1986년산 올드 빈티지 와인이다. 이름은 ‘킨타 도 카르모 가하페이라 비뉴 틴토 1986(Quinta do Carmo Garrafeira Vinho Tinto 1986)’. 카베르네 소비뇽에 포르투갈의 토착 품종을 블렌딩해 만든 것인데 완벽한 균형미와 우아함을 선사했다. 예전에 이 와이너리가 ‘킨타 도 카르모’라 불리던 시절에 생산되던 와인이다. 이후에 보르도의 유명 생산자 도멘 바롱 드 로실드(Domaines Barons De Rothschild)와 지분을 나누고 함께 와인을 만들던 시절도 있었다.

중간에 여러 변화를 겪긴 했지만 훌리오 가문은 5대째 이곳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들 부부는 지금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유럽에는 개인이 소유한 성이 많지만 대체로 레스토랑이나 대여 공간으로 개조해 상업적으로 활용된다. 옛모습 그대로 고스란히 간직돼 있다는 점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아마도 훌리오 가문 사람들에겐 이곳이 삶의 터전이자 일터이자 가장 소중한 유산이리라. 포르투갈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곳이란 생각이 든다.

여행정보

인천에서 포르투나 리스본으로 바로 가는 항공편은 없다. 암스테르담, 프랑크푸르트, 런던, 마드리드 등의 도시 중 한 곳을 경유해야 한다. KLM 네덜란드 항공으로 포르투로 들어갔다가 리스본으로 나오는 방법을 추천한다. 갈 때는 인천~암스테르담이 11시간5분, 암스테르담~포르투가 2시간45분 걸리고, 올 때는 리스본~암스테르담이 3시간, 암스테르담~인천은 10시간5분 걸린다. 언어는 포르투갈어를 쓰며 호텔, 레스토랑, 쇼핑몰, 주요 관광지에서는 영어도 잘 통한다. 화폐는 유로를 쓰며 물가는 한국의 약 60~70% 수준으로 낮고, 서유럽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도 낮은 편이다. 전압은 한국과 같은 220V를 쓴다. 기후는 온화한 지중해성을 띠며 연평균 기온은 12~37도 내외이고, 강수량은 1500㎜ 안팎이다. 여행 적기는 봄·가을인 4~6월과 9~11월이다.

포르투 중심부에 있는 포르투·도루 와인 협회를 방문하면 다양한 와인을 시음할 수 있으며 와인의 역사와 특징에 관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빌라 노바 드 가이아 지역의 와이너리들은 대중교통으로 쉽게 갈 수 있고 케이블카도 운행된다. 본격적인 와이너리 투어를 원한다면 포르투, 쿠임브라, 리스보아 등의 도시를 기점으로 잡고 렌터카를 빌려서 주변의 도루, 세투발, 알랭테주를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포르투갈 와인과 와이너리에 관한 정보는 포르투갈와인협회에서 미리 살펴볼 수 있다. 국내에서 열리는 포르투갈 와인 행사에 관한 소식은 글로벌 와인 마케팅 그룹 소펙사의 이벤트 게시판을 참고하면 된다.

포르투=나보영 여행작가 alleyna20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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