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길고 긴 법정 공방을 지속하고 있지만 재무적인 준비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패소할 가능성에 대비해 쌓아놓은 충당금이 피소액에 비해 과도하게 적어서다. 잇따른 소송이 결국 고객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지난 3분기 기준 총 148건의 소송에 피소됐다. 피소금액은 3211억8300만원이다.
우리은행은 올해도 900억원에 이르는 소송에 휘말렸다. 지난 4월 코스닥 상장사 진성티이씨가 우리은행에 금융파생상품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진성티이씨는 앞서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조정을 신청했으나 우리은행이 조정 의사를 철회하면서 4월에 정식소송으로 전환됐다. 내달 12일이 3차 변론기일이다.
양측은 모두 승소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우리은행 측은 "원고가 주장하는 손해배상채권은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볼 가능성이 있다"며 "현재로서는 승소가능성이 높아 은행에 미치는 재무적 위험이 낮을 것이다"고 예상했다.
진성티이씨 관계자는 "승소 가능성이 있으니 소를 제기한 것 아니겠냐"며 "소송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은행들이 소송에 질 경우를 대비해 쌓아놓는 충당금(재무제표상 소송충당부채로 표기)이 실제 피소금액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즉 패소했을 경우 지급할 보상액이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아 소송에 안일한 대처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통상 패소 가능성이 높은 소송의 소송가액을 합산해 소송충당부채를 설정해야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피소액과 소송충당부채 간 괴리가 지나치게 크다"며 "소송에서 패할 경우 그 부담은 고스란히 고객의 몫으로 돌아간다"고 강조했다.
우리은행의 소송충당부채는 지난해 말 52억1800만원에서 올해 3분기 77억5000만원으로 48.5% 증가했다. 소송충당부채가 늘었지만 피소액(3211억8300만원)에 비교하면 40분의 1 수준이다.
신한은행은 현재 1심에서 패소가 결정된 소송에 대해서만 122억4100만원의 소송충당부채를 설정했다. 신한은행은 리먼브라더스 홀딩스와 부채담보부증권(CDO) 투자금 반환 소송을 진행 중이다. 1심에서 패소해 항소를 제기했다.
이를 포함한 올 3분기 기준 신한은행이 계류된 피소사건은 총 122건이다. 피소 소송금액은 2050억1100만원으로 소송충당부채보다 약 17배 많다.
신한은행 측은 "충당부채로 계상된 소송 이외의 잔여 소송결과는 재무제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면서도 "향후 소송의 결과에 따라 추가적인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은행 역시 소송충당금을 낮게 설정한 건 마찬가지다. 국민은행이 피고로 계류 중인 소송은 총 108건, 소송가액은 2020억600만원이다. 이 역시 소송충당부채(63억9100만원)의 30배를 웃돈다.
국민은행은 결과 예측이 불가능한 중요한 소송사건으로 명시한 소송도 충당금을 설정하지 않았다. 최근 국민은행은 버나드 매도프 인베스트먼트(Bernard L.Madoff Investment)와 환매대금반환청구 건으로 법적 다툼을 이어왔다. 피소가액은 480억6800만원으로 현재 소송 중단 상태다.
국민은행은 "1심 소송 중 다른 투자자들을 상대로 한 관련사건의 경과를 보기 위해 소송을 중단한 상황"이라며 "올 3분기 현재까지 소송 중단 상태가 계속돼 결과를 예측할 수 없으며, 패소 시 소송가액 상당의 손실이 발생한다"고 공시를 통해 설명한 상태다. 미국 등 현지 각 법원에서 진행 중인 관련사건의 결과에 따라 대응 방향을 결정할 예정이다.
KEB하나은행의 경우 피고로 진행 중인 소송이 178건, 피소금액은 3586억2000만원이다. 소송충당부채는 925억원으로 피소액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eunin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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