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LG전자 세탁기의 수입 급증으로 자국 산업이 중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판정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21일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권고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지난 10월 ITC가 개최한 공청회에서 삼성·LG는 과도한 수입규제조치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분위기여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월풀이 삼성·LG의 가격공세로 피해를 보고 있다며 ITC에 제소하면서 시작됐다. 월풀이 미국 세탁기 시장에서 여전히 지배적 위치에 있고, 삼성·LG 세탁기 가격이 더 비싸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ITC는 월풀 손을 들어주고 있다. ITC가 자국기업 이익을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가운데 삼성·LG는 공동전선을 펴는 등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삼성·LG는 억울함을 무릅쓰고 월풀이 요구하는 ‘50% 관세 부과’ 대신 ‘저율관세할당(TQR: 일정 물량에 대해서만 낮은 관세를 매기고 이를 초과하는 물량엔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 적용을 제안했다. 양사는 미국에 공장을 건설 중이란 점을 호소하고 있지만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지금까지 미국의 통상공세에 민·관 공동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해 왔다. 하지만 업계가 정부에 과연 믿음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중견 철강업체 넥스틸이 미국 상무부로터 고율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받았을 때 정부 도움이 얼마나 절실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어쩌면 삼성·LG는 대기업이란 이유로 미국 통상당국을 상대로 외로운 싸움을 감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 기업으로선 미국 통상당국이 제소와 조사단계에서부터 자국기업 의견을 경청하는 모습을 부러워할 법도 하다. 정부는 미국이 세이프가드를 발동하면 WTO 제소를 검토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WTO 제소조차 기업 요구보다 정부의 사안별 판단에 따르는 게 한국 현실이다. 미국의 파상적 통상공세에 기업의 긴장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한국 통상당국은 미국만큼은 아니어도 기업 의견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대변하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볼 때다.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