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런던 한식레스토랑 데미셰프 이상엽씨
인천재능대 호텔외식조리과 졸
‘글로벌’과 ‘초연결’이 화두인 새 시대의 덕목은 개성과 협력입니다. 국내외 구분은 무의미해지고 능력이 중요해졌습니다. 학벌과 배경을 보지 않는 진정한 ‘블라인드 채용’은 해외에서 먼저 이뤄지고 있습니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와 한경닷컴은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는 ‘해외취업 전문대 인재’를 소개하는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영국은 스타 셰프의 본고장이다. 최근 국내 주류업체 CF에 등장해 화제가 된 고든 램지, 세계적 유명 셰프 제이미 올리버 등이 대표적이다. 런던은 그 중심에 있다. 파리와 뉴욕을 제치고 미슐랭 가이드에서 다뤄지는 레스토랑이 가장 많은 도시가 런던이다.
현지의 한식 레스토랑 ‘진주’에서 데미 셰프(부주방장)로 일하는 이상엽 씨(24·사진)가 해외 취업 행선지로 런던을 택한 이유 중 하나다. 스타 셰프 문화를 만들어낸 본고장에서 직접 부딪쳐보고 싶었다. 경험의 폭과 깊이가 다를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지난달 휴가차 귀국한 이 씨를 만나 왜 영국을 택했는지 물었다. “셰프에 대한 인식부터 다르더군요.” 그는 영국에서 스타 셰프 문화가 나온 배경으로 ‘업(業) 자체에 대한 존중’을 첫 손에 꼽았다.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셰프가 뜨고 있지만 풍토와 저변에서 차이가 난다고 했다.
물론 그 이유만으로 영국까지 건너간 것은 아니었다. 원래 이 씨는 제과·제빵이나 디저트를 전문으로 배우려 했다. 해당 분야에 일가견 있는 벨기에나 일본 취업을 염두에 뒀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어느 한 분야만 맡기보다는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배워 주방을 ‘지휘’하는 셰프가 되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게 런던행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씨가 일하는 ‘진주’는 국내에도 이름이 알려진 한국계 미국인 셰프 쥬디 주가 오너 셰프를 맡고 있다. 런던 소호 지역에 위치했다. 이 씨는 “소호는 우리나라의 이태원이나 홍대 같은 분위기”라고 소개했다. 젊고 캐주얼한 분위기의 이국적인 외국 음식점이나 유명 미슐랭 레스토랑이 많은 곳이라는 설명이다.
“영국에서 한식이 통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전통적인 한식과는 조금 다르게 접근하기도 해요. 케이크를 만들되 식재료를 인삼이나 흑임자를 쓴다든지, 유자청을 이용해 디저트를 만든다든지. 전통 속의 이색적 느낌을 살리는 식이에요.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처음부터 진로를 뚜렷하게 잡았다. 전문적으로 조리를 배우는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전문대(인천재능대 호텔외식조리과)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 경험이 해외 취업으로까지 이어졌다. 이 씨는 인천재능대가 영국 킹스웨이칼리지와 협약을 맺고 진행하는 현지 교육프로그램에 선발돼 지난해 1월1일 처음 영국 땅을 밟았다. 킹스웨이칼리지 과정을 이수하면서 현지의 국제 조리자격증 3급(WKC International Culinary Diploma Level3)을 취득했다. 3급은 영국에서 통상 호텔급 레스토랑에 취업할 때 요구하는 수준이다.
이 씨가 가족과 떨어져 이역만리 타지에서 셰프 생활을 시작한 것은 보고 듣고 느끼는 ‘경험의 질’ 때문이다. 현지 학교 과정을 이수하던 당시에도 미슐랭 원스타 레스토랑에서 인턴십을 했다. “킹스웨이칼리지가 조리 분야에서 인정받는 학교라 그곳 출신이라고 하면 곧잘 일을 할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진주’에서 일하고 있는 지금도 비번일 때는 틈틈이 유명 레스토랑을 찾는다.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서다. 내년 1월부터는 런던 근교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팻덕’으로 옮긴다. 분자 요리(식재료를 분자 단위까지 계산해 형태와 모양 등을 바꾸는 요리)로 전 세계 1위까지 오른 곳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팻덕에서는 주방에서 일할 겁니다. 한국 셰프들은 대부분 디저트엔 능숙하지 않아요. 파스타면 파스타, 스테이크면 스테이크, 세분화해 올인하는 분위기거든요. 그런데 외국 유명 셰프들은 두루두루 경험을 쌓더군요. 그래야 주방을 속속들이 알 수 있으니까요. 해외 취업을 한 데는 그런 이유도 있었습니다.”
이 씨는 유명 레스토랑들의 노하우를 익히며 20대를 온전히 해외에서 보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건 아니다. 해외 교육프로그램에 선정됐을 때 영국에 가는 걸 포기하려 했었다. 부모의 건강이 나빴던 데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의 장남이라는 무게감마저 어깨를 짓눌렀다.
흔들리던 그를 잡아준 건 학교였다. 학과장부터 나서 설득했다. 고민하면서 준비해오다가 다행히 부모의 건강이 회복되면서 영국행을 결심할 수 있었다. 전문대 특유의 끈끈한 사제간 스킨십이 이 씨를 계속 꿈꿀 수 있게 만들었던 셈이다. 한국에 있는 날이 한 해에 며칠 안 되는 그가 휴가 때마다 꼬박꼬박 학과 교수들을 찾아가는 사연이 거기에 있다.
이 씨는 “해외 취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떨쳤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한국 젊은이들이 지닌 확실한 장점을 강조했다. 그 자신부터 1년 넘게 진급을 못하는 입사 동기가 있는 데 비해 3개월 수습 기간을 마친 뒤 정식 계약하면서 곧바로 진급한 케이스다.
“기본적으로 한국인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일을 훨씬 빨리, 열심히, 그리고 잘 하는 사람들이에요. 고용주 입장에서는 좋은 직원일 수밖에 없죠. 똑같은 일을 해도 한국에서보다 더 인정받는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학교나 정부 지원 프로그램을 적극 찾아보고 지원하면 충분히 해외 취업에 도전해볼 만하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인천=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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