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정부 이틀째 오락가락
"정부 입장 불분명"
조현 외교차관 "논의할 가치 충분"
한국 참여 가능성 열어놓아
전날 청와대 설명과는 미묘한 차이
"불참 땐 제2 애치슨 라인"
홍준표 "한·미동맹 균열 우려"
전문가 "어느정도 참여는 하되
중국 관련 부분은 수위조절 해야"
[ 김채연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 아시아 순방에서 내세운 ‘인도·태평양 안보 구상’에 대한 참여를 놓고 문재인 정부의 균형외교가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갈등을 빚었던 한·중 관계가 최근 극적으로 풀린 상황에서 정부가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정부 이틀째 혼선
조현 외교부 제2차관은 1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인도·태평양 구상’과 관련해 “정부로서는 충분히 논의하고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인도·태평양 개념은 아직 확실하게 다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계속 진화하고 있다. 미국 측과 긴밀하게 협의했고 앞으로 장점을 함께 찾아 나가기로 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인도·태평양 구상에 대해 참여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전날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이 “한·미 간 협의하면서 가능한 협력 방안을 모색해 나갈 수 있다”고 한 발언의 연장선상이기도 하다.
조 차관은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전날 언론 브리핑에서 “우리는 거기(인도·태평양 구상)에 편입될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말한 데 대해선 “다른 각도에서 개인적인 평가를 내린 것이 아닌가 한다”고 일축했다.
이날 외교부 발언은 청와대가 전날 최종 발표한 것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청와대는 “미국이 새로 제시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개념은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외교 다변화 정책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으나 공동의 전략적 목표를 추진해 나가는 데 적절한 개념인지 좀 더 협의가 필요하다”고 모호한 입장을 밝혔다. 외교 전문가들은 “정부의 분명한 스탠스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청와대 참모진이 설익은 외교적 발언을 함으로써 동맹국들과의 신뢰가 손상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 “참여하되 수위 조절해야”
인도·태평양 구상 참여를 놓고 정부의 고민은 깊어지는 모양새다. 동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실크로드 경제권 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추진하고 있는 중국은 미·일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구상에 반발하고 있다.
반면 미·일은 인도·태평양 구상 실현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일은 최근 미·일 정상회담에서 인도·태평양 구상을 공동 외교전략으로 표명했다. 오는 13~14일 필리핀에서 열리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회의에서 미국, 일본, 인도, 호주 4개국은 별도 회동도 할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우리 측에 인도·태평양 구상 참여를 재차 요구한다면 난감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와 정부의 혼선에 대해선 보수 야당뿐 아니라 외교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이날 대구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인도·태평양 시대에서 한국이 빠진 것은 6·25 직전 애치슨 라인(1950년 당시 미 국무장관이 아시아 방위선에서 한반도를 빼고 일본까지만 포함한 것)에서 빠진 것과 동일 선상”이라며 “한·미 동맹에 균열이 가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신중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신범철 국립외교원 교수는 “인도·태평양 구상은 미·중 간 경쟁적 측면이 있지만 항행의 자유 등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면도 있다”며 “한·미 동맹 차원에서 일정 부분 참여하되 중국과 관련한 부분은 수위 조절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인도·태평양 구상은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해양 패권왕국을 차지하려는 대중 차단막인데 우리가 공개적으로 참여한다, 안 한다 말하기는 매우 어렵다”며 “사드처럼 북핵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정책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참여를 선언적으로 말하기보다는 절제된 자세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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