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수위 '여론재판'
작년 9957명 무고혐의 입건
실제 구속된 사람은 5%에 불과
형량도 대부분 징역 1년 미만
고의성 입증 쉽지 않아
허위사실 유포해도 대부분 무죄
[ 이상엽 기자 ] 고소·고발과 무고가 급증하는 배경엔 ‘솜방망이’ 처벌이 있다.
무고죄 법정 형량은 최대 징역 10년, 벌금 1500만원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무고 혐의로 입건된 사람은 9957명이다. 이 가운데 재판에 넘겨진 사람은 2104명에 그쳤다. 그나마 구속은 5%인 109명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불구속되거나 약식명령으로 마무리됐다. 형량도 대부분 징역 1년 미만이었다. 처벌이 물렁하다 보니 일선 검찰청에 접수되는 형사 고소·고발 건은 연평균 50만 건에 달한다. 일본의 약 60배에 이르는 수치다. 무고 혐의 입건자는 최근 5년 사이에 17% 증가했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사회가 팍팍해질수록 법대로 해결하자는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무고죄도 덩달아 늘고 있다”며 “형사소송법상 무고죄는 피고소인이 느끼는 고통에 비해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법조계의 오랜 관행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부장검사를 지낸 한 변호사는 “검사가 무고를 찾아내는 ‘무고 인지’가 검찰의 인사평가에서 높은 점수로 반영된다”며 “고소 사건을 조사하다가 무고 낌새가 보이면 검사가 무고 혐의를 동시에 조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무고로 명예를 훼손당하고 직장을 잃거나 자살하는 사례까지 등장하자 법조계 안팎에서도 소송부터 내고 보자는 식의 태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5월 당시 김수남 검찰총장은 대검 확대간부회의에서 “무고는 사법질서를 교란하고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는 악질적인 범죄”라며 “무고죄를 더 엄정하게 처벌해 사회적 폐해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최근엔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사이버 명예훼손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매체 특성상 끊임없는 전파가 가능하지만 ‘이니셜 등만으로는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실제 처벌이 이뤄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직접 댓글을 찾아내 고소하더라도 보통 30만~50만원 수준의 벌금형으로 끝난다.
명예훼손은 특히 허위사실을 유포했을 경우 처벌이 가중돼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심각한 범죄 행위다. 하지만 법원은 해당 정보를 알릴 때 허위임을 인식하거나 고의로 했다고 보기에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할 때 무죄를 선고하는 경우가 많다. 형사소송 전문 변호사는 “허위사실을 명백히 유포했음에도 피고인이 ‘허위가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거나 ‘고의성이 없었다’고 주장하면 이를 입증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이유로 SNS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부정선거로 당선됐다’는 취지의 비방 글을 올렸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50대 스님에게 지난 9월 서울서부지법 형사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이상엽 기자 ls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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