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승용 농촌진흥청장
가정형편 어려워 김제 농업고등학교 진학
친구따라 본 공무원시험서 '1등' 해
[ 김재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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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꿈은 공무원이 아니었다. 곡창지대인 김제에서 정미소를 운영하던 아버지의 사업이 중학교 때 급격히 안 좋아지면서 어쩔 수 없이 김제농고로 진학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선택했다. “광주로 고등학교를 시험 봐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정형편이 안 좋으니까 도저히 갈 수가 없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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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자 학교 친구들은 하나둘 취업을 나갔다. 농고라 실습한 농장 등에 취직했다. 그의 동기 졸업생 중 대학에 진학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는 실습을 나가지 않았다. 라 청장은 “정말 대학에 가고 싶었다”며 “집안 형편이 안 되니 장학금을 받으려면 시험을 잘 봐야 하니까 실습을 나가지 않고 숨어서 공부했다”고 회상했다.
학교가 끝나면 읍내 독서실로 갔다. 새벽 4시 반까지 공부하고 집으로 들어가 잠시 자고 아침에 보리밥 도시락 두 개를 싸들고 다시 나가는 생활이 반복됐다. 새벽에 집에 들어오면 어머니가 전기곤로에 밥을 끓여줘 그걸 먹고 잤다. 목표는 공주사범대였다. 당시 처지를 고려하면 선생님이 되는 게 가장 안정적이었다. 자정 무렵이면 머리도 식힐 겸 신문 사설을 베껴 적었다. “뜻도 몰랐죠. 졸려서 그랬어요. 당시 신문은 조사만 빼고 다 한문이었는데 그걸 베껴 쓰면 마음이 안정되고 잠도 쫓고 한문도 익힐 수 있었어요.” 이때 익힌 한문은 나중에 큰 힘이 됐다.
그렇게 6개월간 대입 시험 공부를 하던 때 독서실에서 동급생을 만났다. 친구는 농촌지도직 공부를 한다고 했다. 그런 게 있었는지도 몰랐다. 친구는 시험에 합격해 공무원이 됐다. 마음에 혼란이 왔다. 라 청장은 “친구는 바로 공무원이 됐는데 나는 대학에 가도 학비와 생활비는 물론이고 당장 네 명의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데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대학에서 공무원 시험으로 튼 계기였다. 그리고 그해 치러진 농림직 9급 시험에서 1등으로 합격했다. 1등임을 알게 된 건 발령 번호가 1번이었기 때문이다.
전주=FARM 김재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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