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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 카톡 답장엔 넵이 정답?… '넵 병' 걸릴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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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과장 & 이대리

"플필 사진 뭐냐, 이상해!"… 제발 관심 끊어줘요

직장인 신종 직업병 '넵 병'
'네?=뭐라고?' '넹=일단 알겠다'
'넵=바로 처리 하겠다'란 뜻
"간단한 답에도 신경 쓰여"

24시간 감시창 된 프로필
개인 메신저 프로필 사진에
'어디갔냐, 못나왔다' 사생활 간섭
"카톡방 탈퇴하고 싶어요 ㅠㅠ"



[ 이지현 기자 ]
‘네?’ ‘네’ ‘넹’ ‘넵’….
카카오톡이나 메신저로 대화할 때 상사 지시에 대한 직원들의 대답 유형이다. ‘네?’의 속뜻은 ‘뭐라고?’, ‘네’는 ‘그래 알았어’, ‘넹’은 일단 대답한다는 의미다. ‘넵’은 바로 처리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네...’처럼 마침표를 몇 개 붙이는 건 업무를 거절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알아달라는 뜻이라고 한다. 얼마 전 증권가에 돈 ‘찌라시(증권가 정보글)’ 내용이다. 이 글을 본 상당수 직장인이 박장대소했다는 후문이다. 자신의 처지와 마음을 완벽하게 정리해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박 대리는 “카카오톡에서 상사와 업무 얘기를 하는 일이 많다 보니 답변할 때도 나름 요령이 생겼다”며 “하지만 찌라시가 퍼지면서 이제 ‘네?’ 같은 대답은 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김과장 이대리들에게 카카오톡, 사내 메신저 등이 제2의 일터가 되고 있다. 사적 연락을 위해 활용하던 메신저가 업무용으로 바뀌면서 ‘메신저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직장인까지 늘고 있는 분위기다. 상사나 선배 눈치를 봐야 하는 직장인은 간단한 대답이나 문장부호에도 신경 써야 한다. 한번 들어가면 나가기 어려운 ‘단체방’은 직장인 사이에서 신종 감옥으로 불린다. 휴가 기간에도 업무 지시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직장 상사가 있는 단체방에서 상사 욕을 했다가 회사생활이 지옥으로 바뀐 경우도 있다. 이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메신저 말투 조절도 업무

대형 건설사에 근무하는 정 대리는 메신저에서도 살가운 정을 표시하라는 신임 부장 때문에 두통이 생길 지경이다. 카카오톡 부서 단체방에서 ‘넵넵’ 반응이 이어지자 부장은 “넵 말고는 할 말이 없냐”는 훈계까지 했다. 이후 대답을 길게 했지만 부장의 말투는 여전히 싸늘했다. 언제부턴가 형형색색 이모티콘을 붙이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모티콘이라도 좀 붙여라”는 부장의 핀잔 때문이다. 정 대리는 “업무 소통을 편리하게 하려고 만든 단톡방이 업무 외 스트레스의 온상이 됐다”며 “예전처럼 전화나 대면으로 보고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휴가 기간 계속되는 메신저 스트레스를 피하려다 상사와의 관계만 나빠진 경우도 적지 않다. 대기업 마케팅팀에 근무하는 한 과장은 휴가 기간 부서 단체방에서 나갔다가 팀장의 잔소리에 시달려야 했다. 팀장은 “휴가를 다녀온 뒤 그동안 있었던 회의 결과와 업무 내용을 업데이트하는 것은 우리 몫이냐”며 화를 냈다. 30분 뒤 바로 단체방에 복귀한 한 과장은 휴가 내내 회사 프로젝트 진행 과정부터 회식 사진까지 내려받아야 했다.

“단체방에 직장상사가 ‘한 과장 휴가 타이밍 잘 잡았네, 일이 아주 몰아친다’는 글을 올린 것을 보고 나니 휴가를 안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몸만 편하지 마음은 불편한 휴가였어요.”

‘실수하면 죽는다’ 배경화면도

메신저 배달사고로 직장 생활이 지옥으로 바뀐 직장인도 여럿 있다. 정보기술(IT)업체에 다니는 김 사원은 팀장에게서 황당한 지시를 받은 뒤 부서 단체방에 “정말 멍부(멍청하고 부지런한)가 제일 힘들다”는 글을 썼다가 진땀을 흘렸다. 몇몇 팀원이 모인 단체방에 쓰려던 글을 부서 단체방에 올린 것이 화근이었다. 김 사원은 한 달이 넘도록 팀장의 소소하고 집요한 괴롭힘에 시달려야 했다.

자동차 부품사에 다니는 성 대리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회사 동기들과 채팅을 하다 실수로 부서 단체방에 “웃기는 놈이네. 어이없어”라는 말을 남겼다. 심지어 부서 단체방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채 대화를 이어가려던 성 대리에게 옆자리 과장이 크게 웃으며 “뭐가 그렇게 어이없어”라며 눈치를 준 다음에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죄송합니다”라는 말로 위기를 모면한 그는 이후 ‘실수하면 죽는다’라는 문구가 적힌 사진으로 부서 단체방 배경을 바꿨다. 성 대리는 “주변 동기들에게도 배경화면 변경을 추천하고 있다”고 했다.

“개인 메신저 탈퇴했어요”

일과 사생활의 경계가 무너져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직장인도 많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정 차장은 최근 개인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없애버렸다. ‘사진이 못 나왔다’ ‘부담스럽다’며 인신공격성 발언을 하는 직장 상사들 때문이다. 정 차장은 “사진을 없앴더니 또 ‘왜 없앴냐’ ‘실연당했냐’고 잔소리를 했다”며 “직장 사람들은 다 차단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사생활을 지나치게 공개하는 직장 상사도 부담이다. 중견 가구회사에 다니는 김 주임은 단체방 내 ‘TMI(too much information)’ 과장 때문에 짜증 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김 주임의 상사는 회사 단체방에서 업무 중 생긴 일은 물론 사생활까지 끊임없이 늘어놓는다. 퇴근 후 드라마 내용을 중계하는 것은 물론 주말에 선을 본 결과까지 올려놓을 정도다. 김 주임은 “사생활을 다른 팀원들이 들어야 할 의무는 없다”며 “일 얘기를 위한 단체방과 수다를 떨기 위한 단체방의 성격을 구분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소비재 기업에 다니는 최 대리는 한 달 전 카카오톡을 탈퇴했다. 시간을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회사 사람들의 메시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다. 최 대리의 부서장은 업무 중 카카오톡을 쓰지 않아 상사와의 관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일하느라 2~3시간 동안 메신저를 보지 않으면 100개 가까운 메시지가 쌓여 있다”며 “‘특이한 사람’이라는 눈초리가 신경 쓰이지만 단체방에서 해방된 기쁨이 더 크다”고 웃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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