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들의 대참사
댄 라이언스 지음 / 안진환 옮김 / 한국경제신문 / 504쪽 / 1만9000원
미국 드라마 '실리콘밸리' 작가
스타트업의 허상·이면 파헤쳐
신기술·성장 없는 일부 기업
신화적 스토리로 가치 '뻥튀기'
창업 광풍에 유쾌한 경고
“스타트업이라는 게 뭘까요? 저희처럼 새로 창업한 회사는 모두 스타트업이라 할 수 있나요?”
필자가 마케팅 컨설팅이나 강의를 할 때 스타트업 대표,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종종 듣는 질문이다. 재미있지 않은가. 스타트업 스스로 스타트업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헷갈린다는 얘기다. 그들의 머릿속에도 ‘스타트업은 어떠해야 한다’라는 추상적 이미지가 나름대로 있기 때문이 아닐까.
스타트업(startup)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용어다.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하고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기업을 일컫는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혁신적’이란 단어가 아닐까 싶다. 따라서 인터넷이 혁신적인 기술로 등장했을 때 닷컴 기업은 모두 스타트업으로 지칭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닷컴기업이라고 모두 스타트업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지금 시대에 요구하는 혁신은 닷컴기업 그 이상의 수준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필자도 450여 개의 국내 스타트업을 만났고, 이들 중에는 말 그대로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지닌 기업도 많았다. 그런데 이들 스타트업 중에서 기업 형태로 생존하고 있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투자유치 실패가 가장 큰 요인이긴 하지만 스타트업 내부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비단 그뿐만은 아니다.
천재들의 대참사에는 스타트업이 저지를 법한 수많은 실수와 오류들이 실화를 바탕으로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이 책은 뉴스위크와 포브스에서 기술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한 댄 라이언스의 체험기다. 50대 초반이었던 그가 이른바 미국의 젊은 천재들이 모였다는 스타트업 허브스팟(Hubspot)에 입사하기 위해 면접을 보는 순간부터 기업공개(IPO)를 지켜보고 퇴사하기까지의 기록이다. 솔직히 전하면 자전적 굴욕기에 가깝다. 이 책은 이메일을 주고받을 때마다 ‘세계정복’이란 자신의 목표를 대문자로 쓰며 무모하다 싶을 만큼 겁 없이 도전하는 20대 스타트업 멤버와 직장에서 해고된 뒤 새 직장에 들어와 다소 위축된 50대 직원이 서로 소통하며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도전과 모험인지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준다.
불의와 부당함을 못 참는 기자 근성이 살아 있던 저자가 허브스팟이란 스타트업 내부의 문제들을 지적하기 시작하며 조직에 융합되지 못해 겪은 갈등의 산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스타트업이 강조하는 혁신, 자율, 창의성 등을 앞세워 규율이나 규칙, 프로세스, 매너, 경험 등을 무시한 채 회사가 운영될 때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저자의 경험을 통해 전해진다. 이런 회사가 IPO를 성공적으로 치르고 지금도 여전히 20억달러가 넘는 기업가치로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에 의구심이 들 지경이다. 세상의 쓴맛 단맛을 모두 맛본 나이든 경력자의 눈에 비친 스타트업의 생태계는 파라다이스처럼 보였다가도 도박판처럼 보인다. 자율적인가 하면 방종에 가까운 무질서로도 보이고, 수평적인가 했다가도 무례함으로 보이는 등 여러 상반된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스타트업이 추구하는 것이 바로 혁신이지 않던가. 필자도 사회생활 20년차이기에 저자의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혁신은 과거를 답습하지 않고 빠른 속도로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만들어내는 무엇인가를 의미하는 게 아닐까. 혁신의 과정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수반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단시간에 자신의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스타트업에 속도와 혁신 외에 다른 것까지 요구하는 것은 과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상황을 이해할 때도 있고,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젊은 친구들의 입장이 될 때도 있다. 저자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줄 수 없는 이유는 허브스팟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결국 그들이고 저자는 그곳을 떠나왔기 때문이다.
영화 ‘인턴’처럼 나이 든 비서의 조언이 스타트업 대표와 멤버에게 도움이 됐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영화처럼 그렇게 녹록지 않다. 스타트업에 가장 필요하고 부족한 것이 경험이지만 문제는 그런 경험을 갈등이나 충돌 없이 받아들이기에는 스타트업에 몸담고 있는 이들의 연령대가 젊다. 그들 스스로가 선배들 경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다는 데에 원인이 있다. 그 간극을 줄일 수 있다면 혁신적인 스타트업이 더 안정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이 책은 한 편의 소설처럼 읽힌다. 정보기술(IT)기업에 몸담았던 필자의 경험과 책 내용이 오버랩돼 책 읽는 사람이 허브스팟의 일원으로 느껴지는 정도다. 저자와 허브스팟 임원 사이에서 어떻게 중재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이 책읽는 내내 들 만큼 읽는 이를 몰입시킨다.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사람이거나 스타트업의 대표, 스타트업에 몸담고 있는 사람, 스타트업에 투자할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의 실패를 답습하지 말라는 조언을 담은 이 책은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며, 관계의 소중함에 대한 이야기다.
조현경 < 로그인디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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