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 <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
積(적)이라는 글자는 과거 농작물로 세를 바치던 일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세를 내기 위해 쌓은 농작물이다. 그로부터 높이 쌓는 행위 또는 그런 모습을 일컫는 글자로 자리를 잡았다. 다음 弊(폐)가 궁금해진다. 이 글자의 두 부분 중 왼쪽은 과거 동양에서 하반신에 두르는 치마에 가까운 옷이다. 그 옷감을 무엇인가로 두드리는 (복)이 합쳐졌다. 그로써 이 글자가 지니는 새김이 ‘해지다’ ‘해지게 하다’ 등이다.
그래서 弊(폐)는 잘못으로 이어지는 어떤 행동, 나쁜 결과 등을 가리키는 한자로 발전했다. 쓰임이 적지 않다. 우선 ‘적폐’는 오랜 기간 쌓인 잘못된 행위, 관습, 구태(舊態)다. 악폐(惡弊)는 반복해서 이뤄진 나쁜 일 그 자체다. 폐해(弊害)는 그런 행위와 습속으로 인해 생기는 잘못이다. 폐단(弊端)은 그런 잘못이 머무는 곳이다.
남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말은 어폐(語弊)다. 몸과 마음을 아프게 하는 지독한 병증처럼 잘못이 있는 경우는 병폐(病弊)다. 잘못된 행위와 습속이 쌓여 아주 고단한 정도에 이르는 상황은 피폐(疲弊)다. 작폐(作弊)는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다. 잘못인 줄 알면서도 버젓이 그를 행위로 옮길 때 쓴다. 현대 중국에서는 이 단어가 시험장에서 남의 답안을 훔쳐보는 일, 즉 ‘커닝(cunning)’으로 쓰이고 있어 흥미롭다.
補偏救弊(보편구폐)라는 성어가 있다. 중국 사서인 《한서(漢書)》에 나오는 말로, 기울어짐(偏)을 바로잡아(補) 폐해(弊)를 고친다(救)는 엮음이다. 주목할 점은 바로 서 있지 않는 기울어짐, 편향(偏向), 경사(傾斜) 등을 피해야 폐단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의 흐름이다.
요즘 ‘적폐 청산’이 구호처럼 번진다. 맥락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행했던 개혁의 흐름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대개는 파당(派黨)적 이해 탓에 진지하며 알찬 개혁을 이끌지 못했다. 이 점이 우리 사회 ‘진짜 적폐’다. 새 정부 또한 당파적 이해, 정략적 접근으로 정치적 보복의 어두운 그늘로 들어서면 우리 사회가 높이 쌓은 진짜 적폐의 크기만 키울지 모른다.
유광종 <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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