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글날에도 세종대왕의 치적을 되돌아보는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하지만 세종의 한글 창제 못지않은 다양한 업적이 묻히는 감이 없지 않다. 세종은 경제 분야에서도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가장 먼저 세종은 오늘날에도 실천하기 어려운 수준의 복지정책을 입안해 집행했다. 관비들에게 파격적인 수준의 출산휴가를 부여한 것이다. 관비들의 출산 휴가는 7일밖에 되지 않았으나 세종은 이를 100일로 늘렸다. 출산 전 한 달가량의 휴가도 부여했다. 산전·산후 총 130일의 출산휴가를 허용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관비의 남편에게도 출산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한 달의 휴가를 준 점이다. 세종은 2007년에서야 도입된 ‘배우자출산휴가제도’를 무려 600여 년 전에 시행한 것이다. 이 밖에 고령자를 위한 복지제도로 80세 이상 노인을 궁궐로 초청해 연회를 베푸는 양로연(養老宴)과 100세까지 사신 분들에게는 쌀과 옷을 내리는 제도를 시행했다. 의녀제도를 전국적으로 확대해 부녀자 치료에 힘쓰기도 했다.
세종은 생산성 향상에도 많은 성과를 보였다. 먼저 세종은 재배 면적 확충에 힘썼다. 그 결과 조선의 토지대장인 양안(量案)에 따르면, 조선 전 시기를 통틀어 세종 재임 기간에 가장 넓은 재배 면적을 확보했다. 또 세종은 단위면적당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우리 땅에 맞는 농서인 《농사직설(農事直說)》을 편찬했다. 당시 사용하던 농서는 중국에서 들여온 것들이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적합하지 않은 내용이 많았다. 세종이 우리의 달력인 칠정산(七政算)을 만들고 측우기(測雨器)를 발명한 이유 또한 명확한 우리나라 고유의 작물 재배 시기와 강수량을 측정해 농업에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정책을 결정하기 위해 최초로 여론조사를 한 것도 세종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430년(세종12년) 세법 개정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를 했다. 조선 초기에는 농사의 작황 상황에 따라 과세하는 답험손실법(踏驗損實法)을 시행했다. 하지만 당시 지방 관리들은 작황 상황을 면밀히 측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도층의 부담을 줄여주는 대신 서민의 부담을 늘리는 형태로 과세하기 일쑤였다. 이에 세종이 세금 징수과정에서 사적인 판단이 개입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일괄적으로 토지 1결에 10말을 정액 징수하는 공법(貢法)을 도입하고자 했다. 하지만 당시 지배층 사이에선 개정안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결국 세종은 당시 17만 명을 대상으로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를 했고, 관료들을 대상으로 한 전문가 여론조사도 병행했다. 세종은 이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조세제도를 개편했다.
한글이 우리 민족 최대의 발명품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세종이 ‘대왕’이라는 칭호를 부여받은 것은 한글 창제 말고도 수많은 업적이 있었기 때문임을 기억했으면 한다.
박종호 < KDI 전문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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