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인 듯 감기 아닌 질환 주의보
독감·폐렴·A형 간염·대상포진…
초기엔 감기와 증상 비슷하지만 치료 없이 방치하면 목숨 앗아가
"환절기 他 질병 가능성 열어둬야"
[ 임락근 기자 ] 쌀쌀한 가을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3일 기상청에 기록된 서울의 최저 기온은 6.1도였다. 같은 날 지리산 일대에서는 고드름이 관측됐다. 날씨가 급격히 쌀쌀해지는 환절기에 감기는 단골손님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여름철 줄어들던 감기 환자는 가을로 접어들면서 다시 늘기 시작한다.
하지만 감기보다 주의해야 하는 질병은 따로 있다. 폐렴, 독감, 대상포진, 뇌수막염 등 감기와 증상이 비슷해 적극적인 치료 없이 방치했다가 증세가 악화되고 심하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질환이다. 박민선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바이러스가 몸 안에 침투하면 면역체계가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열이 나고 오한이 드는 등 감기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감기로 착각하기 쉽다”며 “가을철 환절기에 감기 증상이 나타난다면 다른 질병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경과에 더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독감, 10월부터 예방해야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은 대개 감기로 오인받기 쉽다. 대표적인 가을철 질병은 독감이다.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급성 호흡기 질환이다. 리노바이러스, 코로나바이러스 등의 바이러스에 의해 걸리는 일반적인 감기와 종류가 다르다. 발열뿐만 아니라 오한, 두통, 근육통 등 증상이 발생하면서 목이 아프고 기침이 나는 등의 호흡기 증상이 동반되는 증세는 감기와 비슷하지만 급성 폐렴뿐만 아니라 심장 염증, 뇌염 등 신경계 합병증도 일으킬 수 있다.
원인 바이러스가 다양한 일반 감기에 비해 독감은 원인이 특정되기 때문에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해 치료한다. 독감에 걸린 지 얼마 안 돼 맞으면 효과가 더 좋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도 개발돼 있어 예방접종을 통해 예방할 수도 있다. 독감은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유행한다. 질병관리본부는 10~12월에 독감 예방접종을 권고하고 있다.
폐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인 폐렴도 감기로 착각하기 쉽다.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 등 미생물 감염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발열이 시작되고 심한 기침 등 호흡기계 질환이 동반돼 초기 증세가 감기와 비슷하다. 하지만 폐렴이 진행되면 패혈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기흉, 폐농양 등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
감기 증세와 비슷한 질환 ‘주의’
감기와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초기 증세가 감기와 비슷한 질병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A형 간염이다. A형 간염은 B형 간염이나 C형 간염과 달리 혈액을 통한 감염이 아니라 A형 간염 바이러스에 오염된 음식이나 물을 섭취하면 전염된다. 평균 4주가량의 잠복기를 거친 뒤 감기몸살처럼 열이 나거나 식욕이 감소하고 전신 쇠약감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만성간염으로 진행되는 사례는 적지만 급성췌장염, 급성신부전, 담즙정체성간염, 혈구감소증 등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증 합병증은 급성 간부전이다. 급성 간부전으로 진행되면 사망 위험이 있기 때문에 간 이식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급성 신우신염도 감기와 증세가 비슷한 질환 중 하나다. 급성 신우신염은 요로감염의 일종으로, 신장이나 신우에 세균 감염으로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급성 신우신염의 합병증으로는 신장농양, 패혈증이 생길 수 있으며 만성 신우신염, 만성 신부전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박 교수는 “처음에는 감기몸살처럼 발열이 시작되고 배뇨통 등 통증이 동반된다”고 했다.
대상포진과 헤르페스 바이러스 감염증 같은 바이러스성 감염증도 감기로 오인할 수 있다. 대상포진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소아기에 수두를 일으킨 뒤 몸속에 잠복상태로 있다가 면역력 감소 등으로 다시 활성화되면서 나타난다. 초기에 발열과 쇠약감 등 증상이 나타나며 이후 피부에 띠 형태의 붉은색 발진 등이 생기고 통증을 유발한다.
헤르페스 바이러스 감염증은 단순포진이라고도 한다. 초기 감염 땐 감기와 비슷한 증상으로 시작돼 구내염과 인후두염이 나타난다. 재발하는 경우에는 주로 입, 입 주위, 입술, 구강 내 점막 등에 물집이 생긴다. 2형 헤르페스 바이러스 감염증은 일종의 성병이다. 성기 부위에 물집이 생기고, 발열, 근육통, 피로감, 무력감 등의 증상이 동반된다.
뇌수막염 등 치명적 질환도 조심해야
단순 감기인 줄 알고 제때 치료를 안 했다가 증세가 악화돼 목숨을 앗아가는 질환도 있다. 뇌수막염이 대표적이다. 뇌수막염은 뇌와 뇌조직을 감싸는 막 사이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바이러스나 세균이 몸속 뇌척수액공간에 침투해 발병한다. 고열, 오한, 두통 등이 나타난다. 일반적인 감기나 독감과 비교할 때 강도가 훨씬 심하다.
바이러스성 뇌수막염은 자연 치유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 바이러스의 침투 영역이 깊거나 증상이 심할 때만 항생제 처방을 한다. 하지만 세균성 뇌수막염은 즉시 항생제 처방을 해야 한다. 세균성 수막염의 치사율은 평균 10~15%이며, 생존자 중 15%가량에 청각 상실, 신경 손상 등 후유증이 남는다.
임파선암이라고 불리는 악성림프종도 초기 증세는 감기와 비슷하다. 악성림프종은 몸속에 침입한 세균, 바이러스 등과 싸우는 역할을 하는 림프구가 제 역할을 못하면서 생긴다. 오한, 발열과 함께 체중이 줄어드는 등의 증세가 나타났다가 악화되면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 백혈병도 비슷하다. 발열, 쇠약감, 피곤함, 체중 감소로 증세가 나타나다 과다 증식한 백혈구로 인해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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