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랗고 납작한 과자 두 개가 마주보고 있다. 이들에게는 철사로 된 팔다리가 달려 있어 마치 사람처럼 살아있는 느낌을 준다. 한 과자가 두 팔을 벌리고 다른 과자에게 ‘이리 와서 안기라’는 몸짓을 보낸다. 이 과자의 한 쪽 면에는 달콤한 크림이 발라져 있다. 두 과자가 합치면 가운데 크림이 들어간 과자 샌드, 즉 ‘완벽한 한 쌍’이 만들어진다. 미국 작가 테리 보더(52)의 사진 작품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포옹’이다. 보더는 “두 과자가 포옹하는 모습은 철학자 플라톤의 책 ?향연?에 나오는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며 “두 사람이 한 몸으로 합쳐지고자 하는 갈망인 사랑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소셜네트워크(SNS)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보더의 개인전이 지난 13일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개막했다. 보더는 의인화된 사물을 적절히 배치해 스토리를 만든 뒤 이를 사진으로 찍는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스토리는 주로 유머를 담고 있거나 가슴 찡한 내용, 또는 사회에 대한 촌평을 날리는 내용 등이다. 작품의 형식과 내용이 젊은 층의 기호에 맞아 SNS에서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다. 미국 뿐만 아니라 중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이탈리아 영국 등에서 대중매체를 탔고 미국에서는 쉐보레 등 유명 브랜드의 광고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번 한국 전시회는 그의 첫 해외 개인전이다. 사진 62점 등 총 90점의 작품이 전시됐다.
보더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소재를 활용해 작품을 만든다. 빵, 계란, 과일, 수저, 손톱깎기, 립밤 등이다. 작품 ‘왕따 계란’을 보면 팔다리가 달린 흰 계란이 있고 그 앞에 나무 바구니가 놓여 있다. 바구니 안에는 알록달록한 색깔이 칠해진 계란이 들어 있고 바구니에는 ‘Colored only(유색인 전용)’라는 메시지가 쓰여 있다. 하얀 계란은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못마땅하다는 듯 이 바구니를 바라본다. 형형색색의 계란이 든 바구니를 선물하는 건 미국의 부활절 풍습이다. 보더는 이 풍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작품을 만들었다. 인종차별의 어두운 역사를 고발하는 의미가 담겼다.
보더는 “하루나 이틀 정도 사물(오브제)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사물이 살아있는 것처럼 상상을 하게 돼 이를 바탕으로 스토리를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개인전을 맞아 대추 곶감 라면 등 한국적 사물로도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 ‘매끄러운 피부 관리’를 보면 의인화된 말린 대추가 거울을 보고 얼굴에 피부관리용 마스크팩을 붙이고 있다. 보더는 “대추가 피부 미용에 좋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표면이 쭈글쭈글해 의외라는 생각이 들어 이와 같은 작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라면을 끓일 때 면이 물 위에 떠오르는 것을 보고 이를 땟목으로 표현한 작품 ‘슬픈 안녕’도 있다.
흔히 보이는 사물에서 스토리를 찾아내는 능력 때문인지 보더의 작품에서는 평범한 일상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묵직한 예술작품에서 느껴지는 감동이라기보다는 팝아트에서 느껴지는 위트와 비슷하다. 오는 12월30일까지. 어른 1만원, 어린이·청소년 7000원. (02)736-4371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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