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려원이 몰카의 주인공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16일 방송된 KBS 2TV 월화드라마 '마녀의 법정'(극본 정도윤, 연출 김영균 김민태)에서는 성범죄 전담반인 여아부 마이듬(정려원 분) 검사가 몰래카메라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정려원은 전 남자친구가 성관계 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해 피해를 입은 '일반인 동영상 유출 사건'을 맡게 됐다.
그간 정려원이 맡은 마이듬 검사는 승소를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사정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피고인이 반드시 유죄를 받아야 한다는 것만 고려했다.
용의자 선상에 여성 피해자의 전 남자친구 김상균은 이듬을 성희롱하며 자극했고, 이듬 역시 굽히지 않았다.
48시간 안에 확실한 증거를 얻지 못해 김상균은 풀려났고, 대신 김상균의 공범이 잡혀들어온다. 그걸 본 김상균은 집을 내놓은 마이듬의 집에 세입자인척 위장해 부동산 업자와 함께 들어갔고 욕실을 본다는 핑계로 몰래카메라를 설치했다.
퇴근 후 욕실에서 샤워를 마친 이듬은 몰래카메라가 설치됐음을 발견하게 됐고, 다음 회에서는 피해자가 된 이듬이 수사와 사생활 보호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모습이 예고됐다.
몰래카메라의 공포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드라마와 같은 극적인 상황의 몰래카메라가 아닐지라도 우리는 수많은 몰래카메라에 노출돼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명길 국민의당 의원(송파구을)이 국립전파연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지정시험기관의 적합성평가를 거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적합등록’이 된 몰래카메라만 117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파법상 몰래카메라처럼 전파환경이나 방송통신망 등에 중대한 위해를 줄 우려가 없는 방송통신 기자재는 제조 또는 판매하거나 수입하려는 자가 지정시험기관의 적합성평가기준에 관한 시험을 거쳤다는 사실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에게 등록하기만 하면 된다.
몰래카메라의 외관을 형상별로 구분해 보면 USB메모리 형태가 21종으로 가장 많았고, 손목시계와 안경 모양이 각각 15종씩으로 그 뒤를 이었다. 펜 종류가 10종, 자동차 리모컨 형태가 8종이었으며 모듈 형태로 원하는 곳에 삽입해 사용하는 초소형 몰래카메라가 8종이었다.
이외에 보조배터리 형태의 몰래카메라와 탁상시계형 몰래카메라가 각각 7종씩이었고 핸드폰케이스 형태로 실제 핸드폰에 씌운 채 사용하는 몰래카메라가 6종 등록되었다. 단추 모양이나 거울, 담배갑, 라이터 같은 전통적인 모양 이외에 천정에 설치하는 화재경보기 모양, 이어폰 헤드셋 모양의 몰래카메라도 있었다. 기타 특이한 몰래카메라의 형태는 컴퓨터 마우스 모양, 물병 모양, 옷걸이 모양, 핸드폰거치대 모양 같은 것이 있었다.
가장 최근에 등록된 몰래카메라는 물병 모양의 보틀캠이다. 몰래카메라의 종류도 갈수록 다양해지는 걸 알 수 있었다.
최근 적합성 평가를 받지 않고 밀수된 몰래카메라가 대량으로 적발돼 문제가 된 적이 있지만, 몰래카메라는 사실 간단한 적합성 평가만으로도 얼마든 당국에 정식 등록이 가능하며 합법적으로 판매를 할 수가 있다. 특히 소형 카메라 종류인 몰래카메라는 전파환경이나 방송통신망에 중대한 영향을 줄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에 과학기술방정보통신부에서는 사업자가 제출하는 서류만 받아 보관하고 있다. 이 ‘적합등록’ 서류에는 외관 사진조차 포함돼있지 않기 때문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어떤 형태의 몰래카메라가 적합성평가를 통과해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몰래카메라는 대부분 사생활을 침해하는 용도로 이용되거나 상대방의 동의 없이 촬영할 목적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불법적인 행위에 사용될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현행법에서는 간단한 등록 절차만 거치면 합법적으로 판매가 가능하도록 돼 있다.
이에 대해 최명길 의원은 “몰래카메라에 대한 판매와 구입이 법적으로 아무런 제재가 없는 상황에서 촬영만 못 하도록 하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몰래카메라에 대한 방송기자재 적합성평가 체계를 시급히 정비해 몰래카메라가 시중에 무차별적으로 유통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