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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이끄는 기업·기업인] <31> 윤윤수 회장과 ‘휠라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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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처럼 신발을 만들어 팔자고 휠라에 제의해 '대박'
휠라본사가 부도위기 처하자 직접 인수해 흑자로 바꿔



오늘 소개할 기업가는 윤윤수 회장이다. 세계적 스포츠용품업체 휠 라의 경영자이자 대주주이다. 휠라는 1911년 이탈리아에서 휠라 형 제가 세운 기업으로서 세계 5대 스포츠브랜드 중 하나다. 윤 회장은 샐러리맨의 신화로도 불린다. 대학을 졸업한 후 JC페니, 화승을 거 쳐 휠라코리아 대표로서 샐러리맨 생활을 했다. 1994년에는 연봉이 무려 18억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샐러리맨의 신화가 됐다.

혼자 남겨진 ‘흙수저’

그러나 그의 출발은 흙수저 중에서도 흙수저였다. 1945년에 태어났는데, 100일 만에 친모가 세상을 떠났다. 가난하기까지 해서 아버지는 갓난쟁이 윤수를 안고 다니며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젖동냥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아버지마저 폐암으로 세상을 떴다.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고 의사가 되겠다면 의대에 응시했지만 세 번 연속 낙방했다. 의사의 꿈을 접고 한국외국어대를 다니게 됐는데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정학까지 당했다. 우여곡절 끝에 서른 살에야 겨우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다.

졸업 후 그는 미국 JC페니 백화점의 한국 구매사무소에 취직을 했다. 한국 상품을 구매해서 미국 본사에 보내는 일이었다. 여기서의 경험을 밑천으로 화승그룹으로 직장을 옮겨갔다. 르카프 신발을 만드는 그 기업이다. 수출부장 직책을 맡아 미국시장에서 신발을 팔러 다녔고 제법 실적도 좋았다. 수출에 자신감이 생겼다. 1984년, 당시 유행하던 ET 인형을 대량으로 제작해서 수출을 시도하게 되는데 미국 내의 저작권 문제로 수출길이 막혀버렸다. 회사에 80만달러의 손해를 입히게 되었고 퇴사를 해야 했다.

휠라코리아를 세계 1위 휠라로

그 후 독자적으로 한국 상품을 들고 미국에 팔러다녀야 했다. 그러던 중 스포츠의류 업체인 휠라(FILA) 매장이 눈에 들어왔다. 나이키처럼 신발도 같이 팔면 잘 팔릴 듯한데 옷만 팔고 있었던 것이다. 본부를 찾아가 휠라 브랜드로 신발을 팔자며 제안했다. 끈질긴 설득 끝에 승낙을 얻어냈다. 휠라의 신발을 만들어 파는 일을 윤윤수가 직접 맡게 되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휠라 회장이 윤윤수에게 휠라코리아를 세워서 직접 경영하라고 권했다. 1991년 휠라코리아를 세우고 회장으로 취임했다. 46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이룬 성취였다.

휠라코리아는 승승장구했다. 한국인의 취향에 맡는 스포츠용품을 개발한 덕분에 매출이 급신장했다. 휠라코리아는 전 세계 모든 휠라 법인 가운데 1위를 달성했다. 오죽했으면 엔리코 후레쉬 당시 회장이 휠라의 탄생은 이탈리아이지만 성공은 한국에서 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2005년 미국의 휠라 본사가 부도 위기에 처했다. 고급의류를 개발했지만 마케팅에 실패한 결과였다. 윤윤수는 자기가 그 지분을 인수하고 싶었다. 누구보다 경영을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문제는 4억5000만달러라는 인수자금이었다. 휠라브라질, 횔라재팬 등을 설득해서 로열티를 선납받는 방식으로 3억달러를 마련했고 외부 투자자도 설득해서 나머지를 조달했다. 결국 윤윤수는 휠라의 글로벌 본사를 인수해서 총수가 됐다. 2007년의 일이다. 경영혁신에 착수해서 인수 당시 6000만달러 적자이던 것을 2010년에 흑자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탈리아로 진출

성공을 거두자 뜻밖의 제안이 들어왔다. 아쿠쉬네트라는 골프의류업체를 인수한 투자자들이 윤윤수에게 경영을 맡아달라고 요청해온 것이다. 몇 번의 고사 끝에 경영을 맡게 됐고 투자도 하게 됐다.

그의 성공 비결은 좌절하지 않는 것, 그리고 용기에 있는 것 같다. 수많은 실패를 겪었지만 굴복하지 않았다. 늘 다시 일어나서 새로 시작했다. 또 용감하기도 했다. 휠라 본사에 신발을 팔자며 설득했고 직접 발로 뛰면서 성공시켰다. 용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윤윤수의 성공은 독특하다. 대다수 한국 기업가들이 한국 기업에 머무르는 것과 대조적으로 윤윤수는 이탈리아에서 출발한 글로벌 기업의 총수가 됐다. 그의 성공이 어디에까지 이를지 기대된다.

◆기억해 주세요

엔리코 후레쉬 회장은 “휠라는 이탈리아에서 탄생했지만 성공은 한국에서 했다”며 윤윤수를 극찬했다. 윤윤수는 휠라코리아 법인을 전 세계에서 1위 휠라 법인으로 올려놓는 경영능력을 발휘했다. 휠라의 총수를 맡아달라는 제의에 그는 거부만 할 수 없었다.

김정호 <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kim.chungho@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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