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
[ 노경목 기자 ] “가전사업은 수익을 내기 어렵다. 차라리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에 매각하는 게 낫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LG그룹에 조언한 내용이다. 당시 경쟁력이 없던 LG전자 가전사업부를 통째로 해외에 팔라는 것이 골자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LG전자를 비롯한 한국 가전산업은 미래가 없어 보였다. 인건비 비중이 커 수익성을 높이기 힘든 사업 구조를 벗어나지 못했고, 선진업체와의 기술·브랜드 격차는 여전했다. 하이얼 등 중국 업체 추격도 매서웠다. 하지만 한국 가전사업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은 완전히 빗나갔다. 삼성전자 TV는 압도적인 점유율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고, LG전자 가전 사업은 올 1분기 사상 처음으로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미래 TV 시장도 한국이 주도
세계 TV 시장에서 한국의 입지는 절대적이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삼성전자가 21.6%를 점유해 1위를 달리고 있으며 LG전자가 11.9%로 2위다. 실내 생활에서 가장 주목도가 높은 가전제품인 TV는 가격도 가전제품 중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 기업들은 독보적인 디스플레이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 TV 시장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중심이 된 QLED(양자점발광다이오드) TV 진영과 LG전자를 필두로 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 진영 사이의 경쟁은 미래 세계 TV 시장의 향방을 결정지을 전망이다.
무기물을 소재로 한 QLED TV는 내구성이 높고 밝은 장면을 잘 표현한다는 장점이 있다. OLED TV는 스스로 빛을 내는 OLED 입자를 사용해 어두운 장면과 깊이 있는 표현에 강점이 있다. 삼성전자가 장악하고 있는 프리미엄 TV 시장에 LG전자가 2013년 OLED TV를 출시하며 입지를 넓혀 가고 있다. 삼성전자도 올초부터 QLED TV를 선보이며 세를 불리고 있다. 2005년을 전후해 LCD(액정표시장치) TV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소니를 제치며 시작된 한국 TV의 우위는 이 같은 선의의 경쟁을 통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스마트홈으로 영역 확장
백색가전 분야에서도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글로벌 경쟁사와 비교해 가장 빠르게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다. 사물인터넷(IoT)을 통해 음성이나 손짓 한 번으로 냉장고와 세탁기, 에어컨 등을 조작하는 스마트홈이 주요 무대다. 독일의 밀레, 미국의 월풀 등 전통적인 강호들은 물론 중국의 하이얼과 메이디 등은 개별 가전제품 제조에는 능하지만 IoT를 이용한 통신 기술을 가전에 접목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스마트폰을 만들면서 관련 기술력을 축적해온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두각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올 들어 ‘패밀리허브’ 냉장고에 자체 개발한 음성인식 인공지능(AI) ‘빅스비’를 탑재했다. 냉장고와 스마트폰 등을 통해 다른 가전제품들까지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올 3월 인수 작업을 완료한 하만과 협업을 통해 내년에는 집안 가전 전체를 작동시킬 수 있는 AI 스피커도 내놓는다. LG전자는 아마존과 구글 등의 스마트홈 플랫폼으로 자사 가전제품을 구동할 수 있는 서비스를 이미 선보이고 있다. 올해 국내에 출시하는 모든 가전제품에는 블루투스 기능을 탑재해 IoT로 작동이 가능하게 할 계획이다. 지난해 선보인 AI 스피커 ‘스마트싱큐 허브’에 자체 음성인식 AI를 탑재하며 경쟁자들을 한발 앞서가고 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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