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요구하는 한편으로 한국산 제품에 대해 파상적인 통상공세를 펼치고 있다. 미 상무부가 한국산 유정용 강관의 반덤핑 관세율을 최대 24.92%까지 인상하더니, 이번엔 미 국제무역위원회(ITC)가 태양광 전지·패널에 이어 삼성전자와 LG전자 세탁기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 발동을 예고했다. ITC는 또 한국산 페트 수지에 대한 반덤핑 조사에 착수한 데 이어 전력 변압기에 매긴 반덤핑 관세 연장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미국의 이런 통상공세는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다. 세탁기만 해도 그렇다. ITC는 세계무역기구(WTO)가 규정하는 세이프가드 발동요건인 ‘심각한 산업 피해’ 등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납득할 근거를 제시하기는커녕 자국 회사인 월풀 주장만 일방적으로 받아들였다. “WTO가 ITC의 세이프가드를 문제 삼을 수 있다”는 뉴욕타임스 지적도 그런 배경에서일 것이다. 유정용 강관 반덤핑 공세도 다를 게 없다. 미 상무부가 적용한 무역특혜 연장법상 ‘불리한 가용정보(AFA)’나 ‘특정시장상황(PMS)’ 조항 등은 WTO 협정 위반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다수다. 미국의 반덤핑 조치가 WTO에서 패소한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으로선 WTO 제소를 주저할 이유가 없다.
중국의 한국 기업에 대한 사드 보복도 마찬가지다. 통상전문 법무법인 등에서는 사드 보복이 WTO ‘최혜국 대우’ 규정 위반이므로 한국이 WTO에 제소하면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더구나 WTO 제소를 통해 중국이 겉으로만 자유무역을 말할 뿐 보호무역으로 가득 찼다는 사실이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지면 중국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부는 말로만 “WTO 제소를 배제하지 않는다”고 할 게 아니다. WTO라는 다자간 기구야말로 한국의 마지막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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