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백척간두에 서 있는데 정부는 강압적 시장개입뿐
기업을 개혁 대상으로 삼고 기업인을 적폐세력으로 몰면 안돼
일자리 창출 중심엔 기업이 있다"
김영수 < 서강대 교수·사회학, 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
민간기업과 시장경제체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인식과 태도가 우려스럽다. 개발독재 시절을 연상시키는 정부 주도의 밀어붙이기식 정책이 봇물을 이루고 있어서다. 이런 분위기는 최근에 이뤄진 일련의 강제적인 시장 개입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지난주 고용노동부는 한 대형 프랜차이즈 제빵업체에 5300여 명을 직접 고용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런 지시의 정당성과 적법성은 향후 행정소송 등을 통해 세세하게 따져봐야 하겠지만 당장은 해당 프랜차이즈 제빵업체 정규직 직원이 5200여 명에 불과한데도 직접 고용 지시는 무려 5378명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공문을 받은 날로부터 25일 안에 시정지시를 이행하라는 대목은 더 충격적이다. 아예 기업 문을 닫게 하겠다는 생각이 아니고서야 내릴 수 없는 시정명령이지 않은가.
해당 기업이 기일 안에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1차로 약 530억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한다. 만약 이들 모두를 정규직으로 고용한다면 추가로 부담해야 할 인건비는 지난해 영업이익인 600억원에 근접한다. 해당 기업으로서는 과태료든 직접 고용이든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경영의 어려움은 차치하고 생존 자체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의 강압적인 시장 개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통령 후보 시절 공약 사항인 통신비 기본료 폐지가 여의치 않자 대안으로 선택약정할인율을 25%로 올리기 위해 이동통신 3사를 몰아붙였다. 이는 정상적이며 자율적인 기업 활동에 대한 심각한 침해이자 시장경제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소비자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서비스 상품에 대한 강압적인 가격 통제가 정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反)시장적이며 권위주의적인 정부의 태도는 이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이해진 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이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고 새로운 기업의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았다는 개인적인 견해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공정위가 어떤 곳이며, 공정위원장 역할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공정거래법 1조에는 ‘사업자의 시장지배적지위의 남용과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방지하고, 부당한 공동행위 및 불공정거래행위를 규제해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한다’는 위원회 설립 목적이 명료하게 적시돼 있다. 이외의 어느 항목에도 위원회가 기업인의 능력을 가늠하고 이를 평가한다는 대목은 찾을 수 없다. 정부가 기업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지극히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인식의 표현으로밖에는 달리 생각할 수 없다.
북한 핵실험과 건설 경기 악화,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여파와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한국 경제는 그 불확실성이 극에 달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14일 발표한 주요 20개국(G20)의 2분기 성장률에서 한국은 통계가 나온 17개 국가 중 12위에 그친 사실도 이런 위기의식이 단순한 기우가 아니라 현실임을 입증한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을 일방적으로 옥죄는 정책의 집행은 정부가 취할 행동이 아니다.
대기업을 개혁 대상으로 삼고, 기업인을 적폐세력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이래서는 가장 큰 당면 과제인 청년 실업 해소나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통한 고용률 제고는 꿈도 꿀 수 없다. 곳곳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에서 정부가 앞장서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한다면 기업들은 그야말로 백척간두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난 18일 해외로 진출한 국내 기업을 다시 국내로 불러들이기 위해 ‘투자유치제도 종합개편방안’을 연말까지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과연 이런 분위기에서 국내로 돌아오려는 기업이 몇이나 될까. 갈수록 강력해지는 반기업 정책과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인건비, 강경 투쟁을 멈추지 않는 노조 등 숱한 어려움을 무릅쓰고 국내로 돌아오는 기업들에 정부는 과연 어떤 인센티브를 제공할까.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제조업 육성을 위한 가시적인 정책이 아예 사라지고 말았다는 경제계의 자조 섞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가장 확실한 복지제도인 양질의 일자리 창출 중심에 민간기업이 있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김영수 < 서강대 교수·사회학, 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grumpy@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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