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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칼럼] 손에 쥔 대중국 협상카드 내던진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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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해 WTO 제소 않겠다는 청와대
중국이 '시장경제 지위' 얻으려고 애태우는 걸 알고는 있나
우리가 내준 시장경제 지위 철회도 중국이 두려워하는 전략적 카드

최병일 <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국제통상학회장 byc@ewha.ac.kr >



뭐가 그리 급했을까. 청와대는 지난 15일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지 않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바로 전날 WTO 제소 가능성을 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말을 하루 만에 뒤집은 것이다. 전방위적으로 지속되는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해 주권국이 ‘당당히’ 누릴 수 있는 WTO 제소라는 카드를 아예 포기하겠다는 청와대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WTO 제소는 긴 시간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 제소로부터 최종 판정까지는 일러도 2년 이상의 세월이 걸릴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이 WTO에서 패소한다 해도 사드 보복이 중단된다고 장담하지 못한다. 중국이 불만을 품고 불복할 가능성은 차고 넘친다. WTO 제소에서 한국이 승소한다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WTO 체제를 정밀하게 학습한 중국 당국이 사드 보복 시 예상되는 한국의 제소 가능성을 뻔히 내다보면서 그리 허술하게 일 처리를 하지 않았을 테니까.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중국 정부는 “한국 기업들이 중국 법을 어겼다”, “민간의 자발적인 보이콧 사태다”는 주장을 견지해 왔다. 이 때문에 중국이 WTO 규정을 어겼다는 것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이길 가능성도 확실하지 않고, 시간도 걸리고, 이기더라도 보복이 멈출 것도 아닌데 왜 굳이 WTO 제소를 하느냐는 법률기술자들의 논리를 한국 정부가 수용한 것이라면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 셈이다.

사실 중국은 한국이 WTO에 제소할까봐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다. 지금 중국은 서방 세계와 ‘시장경제지위’ 확보를 놓고 거대한 명분 싸움 중인데, 한국이 사드 보복을 이유로 중국을 WTO에 제소하는 순간 판세는 그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덤핑을 대표적인 불공정 행위로 취급하는 국제 통상무대에서 중국은 덤핑을 일상다반사로 하는 불공정 무역국으로 인식돼 왔다. 설상가상으로 최대 수출 시장인 미국과 유럽연합(EU)으로부터 아직 시장경제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중국은 덤핑 판정에서 불리한 상황에 노출돼 왔다. 2001년 WTO 가입 시 향후 15년은 ‘비시장경제지위’를 감수하라는 조건을 중국이 수용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그 굴욕의 15년이 경과했지만 미국 EU 일본 등 주요국들은 즉시 중국에 시장경제지위를 부여하길 거부했다. 중국은 망설이지 않고 WTO에 제소했다. 이 사안은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이 중국을 WTO에 제소한다면 많은 국가들이 이 분쟁에 제3자로 참여할 것이고, 분쟁 과정은 중국이 시장경제지위에 걸맞은 국가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장을 제공할 것이다. 중국식 사회주의체제에서 중국 여행사들이 같은 날 같은 시간부터 한국행 관광상품의 판매 중단을 단행하는 것이 ‘거대한 손’의 개입 없이 가능한 일일까. 1년 만에 반 토막 난 한국 기업들의 중국 실적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한국의 WTO 제소는 중국이 WTO 통상질서의 핵심인 개방·경쟁과는 거리가 먼, 시장경제지위와는 동떨어진 체제임을 보여줄 기회의 장을 열 수 있는 열쇠다. ‘미국 최우선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으로 자유무역체제를 이끌어 온 미국 기세가 주춤하는 사이, 올초 다보스포럼에서 자유무역체제의 선봉이 되겠노라고 기염을 토한 중국의 그 허장성세에 정곡을 찌를 카드를 한국이 쥐고 있는 것이다.

대한(對韓) 무역수지 적자를 문제 삼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을 요구하는 미국에는 ‘당당하게’ 임하는 한국 정부가 무차별 통상 보복을 가해 오는 중국엔 어찌해 “자극하지 않겠다”고 비굴해야 하는가. WTO 제소 카드를 접는다고 대북 제재에 소극적인 중국의 태도가 적극적으로 바뀌길 기대한다면 그건 부질없는 희망사항일 뿐이다.

참고로 한국은 이미 중국에 시장경제지위를 부여했다. 2005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후진타오 중국 주석에게 ‘선물’을 안겼다. 중국으로부터 받은 것은 백두산 호랑이 한 마리와 한국산 김치검역 완화 약속이었다. 한국이 중국에 부여한 시장경제지위를 철회하겠다는 것도 한국의 숨겨둔 카드다. 한국의 WTO 제소보다 중국이 훨씬 더 두려워하는 그런 전략적 카드가 있음을 한국 스스로 인지는 하고 있는 것일까.

최병일 <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국제통상학회장 byc@ewha.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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