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은퇴하자 새삼 조명받는 미야자토 아이의 '슬로 스윙'
일본 선수론 첫 세계랭킹 1위
일본 평정한 뒤 미국서 통산 9승…에비앙 끝으로 13년 프로 은퇴
정확한 샷 앞세워 한시대 '풍미'
"느려서 문제되는 스윙은 없다"
코킹 않고 양팔 쭉 펴 올리면 군동작·흔들림 줄이는 효과
샷 들쭉날쭉 주말골퍼 배워볼 만
[ 이관우 기자 ]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의 은퇴가 묻혀가던 가치를 새삼 일깨운다.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에비앙 챔피언십을 끝으로 13년간 활동한 LPGA 투어를 떠난 미야자토 아이(32) 얘기다. 일본 투어(JLPGA) 19승, LPGA 통산 9승을 올린 그는 한때 일본인 최초로 세계랭킹 1위를 11주 동안이나 지킨 ‘그린 여제’였다. 웃음을 잃지 않는 좋은 경기 매너뿐만 아니라 슬로 비디오를 보는 듯한 느린 스윙 스타일로도 팬과 동료 선수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은 ‘아이짱’이다.
LPGA 최단신인 키 155㎝의 미야자토 아이는 거리가 아닌 정확성이 어디까지 통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임경빈 프로(JTBC 해설위원)는 “LPGA 투어가 점차 180㎝가 넘는 거구의 정글로 변모하고 있지만 단신을 극복한 그가 골프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그럴수록 더 강렬하다”고 했다.
첫 번째가 느림이다. 백스윙 템포(속도)가 슬로 비디오처럼 느리다. 백스윙 톱에서 잠깐 멈추는 마쓰야마 히데키의 ‘스톱 앤드 고’ 스윙이나, 수직으로 클럽을 들어올렸다가 낚아채는 박인비(29)의 느린 백스윙을 닮았다. 느린 템포는 불필요한 스윙 동작을 다듬어 간결하게 만들어준다는 게 장점. 미야자토는 은퇴 전 비거리가 240.86야드로 투어 144위에 그쳤지만 페어웨이 안착률은 78.35%로 투어 21위였다. 임 프로는 “빨라서 문제가 되는 스윙은 많아도 느려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두 번째가 ‘노 코킹(no cocking)’이다. 프로들은 백스윙 단계에서 손목을 꺾어 올리는 코킹 동작을 필수처럼 한다. 지렛대 원리로 헤드클럽의 속도를 가중시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미야자토는 코킹을 하지 않는다. 양팔을 쭉 펴 높이 들어올릴 뿐이다. 그러면서도 240야드대의 ‘준수한’ 비거리를 얻는다. 넓은 아크로 회전 반경을 키우고 높은 백스윙 톱 정점으로 위치 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동작이 비결이다. ‘노 코킹’은 관절 사용을 최소화하기 때문에 스윙 도중 잔동작과 흔들림이 줄어 정확도를 키우는 데 좋다. 스윙에 영향을 주는 신체적 변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병옥 프로는 “미야자토는 팔로 공을 때리는 게 아니라 엉덩이와 몸통의 회전으로만 클럽헤드를 풀어 던지는 방식이어서 정확도와 일관성이 좋다”고 평했다.
세 번째가 균형잡힌 하체다. 평소 등산으로 하체를 튼튼히 다진 그는 대회장 드라이빙 레인지에 고무 발판을 가지고 다니며 ‘밸런스 스윙 연습’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두 발로 물렁물렁한 발판을 밟고 스윙을 하면 몸통이 흔들릴 수 있는데, 이런 불안정한 바닥에서 밸런스를 찾아내는 습관을 어려서부터 들인 게 강한 스윙축의 바탕이 됐다. 박인비는 “다른 사람의 스윙은 잘 보지 않는 편인데, 스윙이 흐트러질 때마다 미야자토 아이의 스윙을 지켜보면서 리듬과 템포를 다시 찾곤 했다”고 말했다.
미야자토의 은퇴 배경은 베일에 싸여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그가 “예전엔 정확도만으로도 통했지만 지금은 거리도 필요한 시대가 됐다”고 고충을 토로한 일화를 들어 체격과 체력적 한계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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