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시훈/이태훈 기자 ] 정부와 여당이 복합쇼핑몰 규제를 위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에 적용하고 있는 의무휴업을 복합쇼핑몰로 확대하고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게 골자다. 출점 여부를 도시계획 단계에서 검토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복합쇼핑몰 규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도 내년부터 복합쇼핑몰에 대해 대형마트 수준의 규제를 적용, 골목상권을 보호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법 개정이 이뤄지면 복합쇼핑몰과 같은 대규모 점포 출점은 사실상 어려워진다. 지금은 전통상업보존구역과 일반구역으로 구분돼 있지만, 이를 상업보호구역 상업진흥구역 일반구역 등으로 세분화해 도시계획 단계에서부터 입지제한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전통시장과 거리상권 보호를 위해 상업보호지역에서는 대규모 점포 신규 출점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복합쇼핑몰 내 유통시설에 대한 영업시간 제한 등은 각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주민 의견을 수렴해 조례로 결정한다.
복합쇼핑몰 규제에 찬성하는 측은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규제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남윤형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소상공인의 일자리 창출 기여도가 큰 만큼 내수 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규제에 반대하는 이들은 복합쇼핑몰 규제가 소비자 선택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지적한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는 “기존의 골목상권이 있는데도 복합쇼핑몰이 생기는 것은 소비자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라며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복합쇼핑몰을 규제한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강조했다.
■ 찬성
'복합몰' 진출로 소상공인 매출 타격…선진국에선 대형 유통점 허가 제한
일자리 창출 기여도 높은 소상공인 보호해야
정부와 여당은 올해 정기국회에서 복합쇼핑몰에 의무휴일을 도입하고 영업시간도 제한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유통업계는 대기업 규제가 강화된다고 골목상권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며 이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뜨겁다.
유통산업발전법을 보면 복합쇼핑몰이란 ‘한 개 업체가 개발·관리 운영하는 점포로, 쇼핑·오락·업무 기능이 집적돼 문화와 관광시설 역할을 하는 점포’로 정의돼 있다. 식당 영화관 등 각종 문화시설을 갖춘 쇼핑몰을 생각하면 된다.
복합쇼핑몰은 2000년 서울 삼성동 코엑스를 시작으로 전국에 100개가 넘게 생겼다. 소상공인들은 복합쇼핑몰 증가가 지역상권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고 토로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올 7월11일에 발표한 ‘복합쇼핑물 진출 관련 주변 상권 영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원의 경우 롯데복합쇼핑몰이 들어서면서 지난 3년간 이 지역 소상공인들의 매출과 고객 수가 많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복합쇼핑물 진출 이후 점포 경영이 나빠졌다’는 응답이 74.6%를 기록했다. 월 매출은 진출 전보다 평균 29.1%, 고객 수는 하루 평균 38.2%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프랑스 독일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은 자국 내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해 도시계획 단계에서부터 대규모 점포 진출을 제한하고 있다. 대형 유통점이 생길 경우 주변 상권에 미칠 영향 등을 평가해 매출 피해 예상액이 10~20%를 넘으면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신규 점포 출점 제한이나 주말 영업 제한 역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선진국들이 시행 중인 제도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복합쇼핑몰 입점이 부동산 가격을 올리기 때문에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규제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복합쇼핑몰이 경기 침체를 해소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논리를 편다.
하지만 주로 대기업이 운영하는 복합쇼핑몰이 증가하는 게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한국은 그리스 다음으로 소상공인이 많은 국가다. 그만큼 소상공인이 국내 경제지표 전반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통계청의 전국사업체조사(2015년)에 따르면 전국 사업체 중 소상공인 비율은 83.7%다. 소상공인이 올리는 매출은 국내총생산(GDP)의 30% 수준이다.
복합쇼핑물을 규제하면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하지만 국내 경제에서 대기업의 일자리 창출 기여도는 1.9%에 불과하다. 반면 소상공인의 일자리 창출 기여도는 30.6%로 대기업의 16배다.
이처럼 소상공인은 국가 경제의 실핏줄과 같은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 소상공인만큼 내수 활성화에 직접적이고 영향력이 큰 경제 주체는 없다. 복합쇼핑몰 규제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침체된 내수 경제를 단단하게 다지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현실적으로 소상공인들과 대기업 간에는 힘의 불균형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 속에서 소상공인 스스로에게만 경쟁력을 확보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올바른 사회 통합의 길이 아니다.
복합쇼핑몰 규제가 당장은 가시적 효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규제는 경제의 큰 축을 이루는 대기업과 소상공인 모두가 공정하게 성장하는 최소한의 견제 장치로, 소상공인에게 경쟁력을 확보할 기회를 제공한다.
■ 반대
외출한 김에 쇼핑·외식·레저 한번에…생활 편리 찾는 소비자 선택 존중돼야
골목상인 보호위해 쇼핑몰 상인 희생돼선 안돼
복합쇼핑몰 규제가 새로 시작될 것 같다. 복합쇼핑몰 신설 제한, 강제 휴무를 명하는 법안이 여럿 발의돼 있다. 복합쇼핑몰이란 신세계 스타필드하남처럼 식당, 상점, 극장 등이 복합적으로 갖춰져 있는 쇼핑 공간을 말한다. 필자가 이 규제에 반대하는 것은 그 피해가 클 뿐 아니라 부당하기 때문이다.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사람은 쇼핑몰 내에 입점해 있는 수많은 식당 및 상점, 오락시설 주인과 직원이다. 강제 휴무 때마다 매출과 수익이 감소하고 직원 급여도 줄어들 것이다. 소비자가 불편을 겪을 것임은 물론이다. 간접적 피해도 따른다. 규제 때문에 새로운 쇼핑몰 건설이 무산된다면 그곳에서 일할 수많은 사람의 일자리도 사라지는 셈이다.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복합쇼핑몰을 규제한다는 것은 난센스다. 골목상권이 많은 식당과 점포의 복합체이듯 복합쇼핑몰도 수많은 식당, 상점, 오락시설로 이뤄진 복합상권이다. 기존의 골목상권이 있는데도 복합쇼핑몰이 생기는 것은 소비자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식구들과 같이 외식하고 부부가 같이 쇼핑카트를 밀며 쾌적하게 쇼핑하고 싶기 때문이다. 외출한 김에 영화도 보고 시원한 책방에서 책장을 넘기며 여유를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골목상권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지 않은가. 소비자 취향의 진화에 맞춰 유통산업도 복합쇼핑몰이라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그것을 규제한다는 것은 상권의 진화, 서비스산업 발전을 막겠다는 얘기다.
복합쇼핑몰 규제는 안 그래도 부진한 내수 경기를 더욱 깊은 수렁으로 몰아갈 것이다. 복합쇼핑몰을 규제한다고 골목상권이 살아날 리 없다. 소비자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골목상권을 좋아할 리 없기 때문이다. 대형마트를 규제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골목상권이나 전통시장은 더욱 가라앉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새로운 규제는 복합쇼핑몰과 입점 업체들에 타격을 안겨줄 뿐 골목상권을 살리지 못한다.
반면 소비자의 해외 지출은 더욱 늘어난다. 연휴만 되면 출국을 위해 인천공항이 북새통을 이룬다. 젊은 사람들도 해외여행을 위해 국내에서는 돈을 아낀다. 소비자 취향은 빠르게 고급화되는데 국내 상권은 발전은커녕 20년 전 모습 거의 그대로이니 외국에 나가서 돈을 쓴다.
소비자 소득은 3만달러로 늘었는데 골목상권은 1만달러 시대에 머물고 있으니 장사가 될 리 없다. 골목상권이 살아나려면 스스로 환골탈태해서 3만달러 시대에 걸맞은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복합쇼핑몰 규제는 이처럼 경제에 해로울 뿐 아니라 부당하다. 무슨 권리로 복합쇼핑몰을 규제하느냐고 묻고 싶다.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들, 시민단체들은 골목상권 상인만의 대변인인가. 복합쇼핑몰에 입점한 식당과 점포,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우리나라 국민이 아닌가.
소비자에게도 위선을 벗어던지라고 말하고 싶다. ‘발로는’ 대형마트와 복합쇼핑몰을 향하면서 ‘말로는’ 골목상권 전통시장 보호를 외쳐 왔다. 그 결과가 대형마트와 복합쇼핑몰에 대한 규제로 나타났다. 만약 골목상권 보호를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했다면 굳이 법을 만들어 마트와 쇼핑몰을 규제할 필요도 없다. 이제 소비자들이 위선을 벗고 본심을 털어놔야 한다. 그래야 한국의 유통산업도 소비자 수준에 맞게 진화한다. 소득은 3만달러인데 식당과 상점은 1만달러 시대에 머물러 있는 모순도 해결할 수 있다. 골목에도 3만달러 소득에 걸맞은 상권이 들어서길 기대한다.
류시훈/이태훈 기자 bad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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