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상한제·HUG 보증 압박에
신반포15차·반포주공1 등 건설사 후분양제 수용 의사
"물량 줄어 청약경쟁 치열해질 듯"
[ 김진수 기자 ]
서울 강남권 재건축단지에서 최근 ‘후(後)분양’을 저울질하는 단지가 늘고 있다. 알짜 재건축 수주전에서 건설회사들이 후분양을 입찰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아파트를 짓기 전 공급하는 기존 제도(선분양 후시공)와 달리 어느 정도 공사가 진행된 뒤 분양하겠다는 것이다. 내년 부활하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우려해 사업을 늦추는 곳이 속출하는 데다 환수제를 피한 단지의 공급도 후분양 영향으로 대거 뒤로 밀릴 가능성이 있어 아파트 청약 경쟁이 더욱 거세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후분양 저울질 본격화
지난달 대우건설이 서울 서초구 신반포15차 재건축 사업 시공사 선정 입찰에서 가장 먼저 후분양제를 들고 나왔다. 분양가상한제 도입,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인하 압력 등으로 재건축조합이 원하는 분양가를 책정할 수 없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조합원에게 많은 이익을 돌려주기 위해 선분양이 아니라 적당한 시점으로 분양시기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게 대우건설의 설명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쟁사인 롯데건설도 후분양을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 4일 시공사 입찰 제안서를 마감한 반포주공1단지(1·2·4주구·사진)도 마찬가지다. 현대건설이 ‘일반분양 안심 플랜(계획)’이라는 항목에서 최적 분양시기를 결정할 때 ‘분양시장 상황에 따른 탄력 적용(선 혹은 후분양 선택)’이라고 명기했고 GS건설도 후분양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통상 건설사는 건설비용을 이자비용 없이 조달할 수 있는 선분양을 선호하지만 재건축 공사를 따내기 위해 강남권에서 예외적으로 후분양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후분양제는 수주 경쟁이 치열한 일부 인기 주거지역에서 제한적으로 도입될 전망이다.
후분양을 강제화하려는 입법 시도도 나온다. 경기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부실시공 논란이 불거지면서 경기도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선별적인 후분양제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화성시을)은 지난달 2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회의에서 개선 방안으로 선별적 후분양제를 제안했다.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의 선분양 제한 규정에 벌점제도를 연계해 국토부가 정하는 벌점 기준을 초과한 건설사에 한시적으로 선분양을 제한하자는 것이다.
◆공급 위축 우려도
아파트를 분양하는 방식은 선분양과 후분양으로 나뉜다. 선분양은 착공 단계에서 미리 분양하고 후분양은 주택을 일정 비율 이상 지은 뒤 분양하는 방식이다. 건설사(시행사)는 HUG의 주택보증을 받은 뒤 계약자를 모으는 선분양으로 공사비 부담을 줄인다. 건설사가 주택 건설 자금을 확보하기 쉬워 아파트 공급이 늘어날 수 있다. 수요자는 현재 가격으로 주택을 장만할 수 있고, 공사기간인 3년간 집값을 나눠 내 주택 구입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 물론 공급과잉과 부실시공, 미분양, 분양권 전매시장 과열 등 단점도 있다.
이에 비해 후분양제는 공정률 80%처럼 공사가 어느 정도 진척됐을 때 아파트를 공급하는 방법이다. 상대적으로 단기간 차익이 생기기 쉽지 않아 주택 투기 가능성이 낮고 입주가 임박해 구입하다 보니 하자 여부, 인테리어 등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부동산 침체기인 2013년 미분양이 우려되는 지역 등에서 건설사의 후분양을 유도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미분양 누적지역에서 분양예정 물량을 준공 후 분양으로 전환하는 업체에 주택보증(현 주택도시보증공사) 대출 지급보증을 제공해 금융회사에서 분양가의 60%가량을 낮은 이자로 대출받게 해주는 방식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자금 동원력이 높은 건설사나 입지가 뛰어난 단지는 후분양을 도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후분양을 당장 시행하기에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건설사가 토지를 확보하고 일정 시점까지 공사비를 조달하려면 신용등급이 높아야 할 뿐 아니라 추가적인 금융비용은 결국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까닭이다. 게다가 보수적인 금융권은 아직도 개별 단지의 사업성을 판단해 대출하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꺼리고 있다.
김승배 피데스개발 대표는 “사업 주체가 시장 상황에 맞춰 선분양, 중분양, 후분양을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게 좋다”면서도 “금융여건이 제대로 받쳐주지 않는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후분양제를 도입하면 공급이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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