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트루드 스타인이 쓴 앨리스 B. 토클라스 자서전
[ 심성미 기자 ]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속 주인공인 작가 길은 1920년대 파리의 예술적 흥취에 크게 매료된다. 1920년대 파리는 문화적으로 융성하던 때였다. 길은 타임머신을 타고 1920년대 파리에서 헤밍웨이를 만난다. 자신의 글을 읽어달라며 조언을 구하는 길에게 헤밍웨이는 “스타인에게 작품을 보여주라”고 말한다.
프랑스 파리를 무대로 활동한 미국 소설가 거트루드 스타인은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엘리엇, 피카소 등 당시 파리의 예술인들에게 ‘대모’ 같은 존재였다.
스타인이 쓴 《거트루드 스타인이 쓴 앨리스 B. 토클라스 자서전》은 독특한 형식의 자서전이다. 제목과 달리 이 책은 토클라스의 자서전이 아니라 스타인의 일생을 다룬 책이다. 그의 동성 연인이던 토클라스의 눈과 입을 빌려 본인의 일생을 회고한다. 스타인은 책의 첫머리부터 토클라스가 자신의 천재성을 알아봤다며 자화자찬한다. “나는 일생동안 딱 세 번만 천재를 만났다고 말할 수 있는데…그 세명의 천재는 거트루드 스타인, 파블로 피카소, 알프레드 화이트헤드였다.”(14쪽)
이는 과장은 아니었다. 스타인은 무명 예술가들의 천재성을 알아보는 날카로운 눈을 갖고 있었다. 1903년 프랑스로 이주한 뒤 파리의 예술인들과 폭넓게 교류했다. 스타인은 마티스와 세잔의 천재성을 일찍이 알아봤고, 피카소에게 예술적 조언을 해줬다. 기자였던 헤밍웨이에게는 “기자를 그만두고 소설을 써보라”고 권했다. 이 책은 피카소, 세잔, 마티스 등 무명의 예술가들이 스타인과 어떤 고민을 나눴고, 20세기 예술의 성지 파리에서 어떻게 거장으로 성장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1920년대 유럽 문화계의 단면을 훔쳐보는 재미가 있다. (윤은오 옮김, 율, 428쪽, 2만원)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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