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 철강
미국, 중견 철강사에도 고율 반덤핑 관세
유정용강관 수출 1위 업체
매출 80% 미국서 올리는 데 하반기 수주 '0'…생사기로
왜 한국업체 타깃 삼았나
한국의 원가자료 못믿겠다 예비판정보다 3배 높여
미국 상무부에 소송냈지만…
소송전 최소 2년 이상 걸려…400여명 직원 일자리 위협
[ 박재원 기자 ]
“한국산 원료(포스코)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무려 25%에 달하는 반덤핑 관세를 부과받았습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더욱이 미국은 매출의 80% 이상을 올려온 시장입니다.”
6일 기자와 만난 박효정 넥스틸 대표는 미국의 강력한 통상압박으로 졸지에 생사의 기로에 섰다고 털어놨다. 현지 로펌을 통해 미국 상무부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판결까지 예상되는 기간은 최소 2년. 그 사이 도급업체 직원을 포함해 약 400명의 직원이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놓였다. 일감이 급감하게 되면 올 연말부터 3조 2교대로 진행하던 근무 형태를 2조 2교대로 전환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수출 1위 업체 옥죄는 美
유정용강관은 셰일오일 등 원유를 뽑아낼 때 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셰일가스 개발 확대 정책으로 미국 유정용강관 시장은 전례 없는 특수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미국 유정용 강관시장에 22만t가량을 수출해온 넥스틸은 올 하반기 들어 수주 실적이 전무하다. 지난 4월 미 상무부가 이 업체 제품에 부과하는 반덤핑 관세율을 24.92%로 인상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8.04%였던 예비판정보다 무려 세 배 이상 높은 관세다. 박 대표는 “그나마 올초 수주해놓은 물량 탓에 한 해를 버티고 있다”며 “국내 업체가 미국으로 수출하는 유정용강관 가운데 70%가량을 담당해오면서 트럼프 정부가 자국 업체 판매를 늘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높은 관세를 매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관세 철퇴 이유는?
상무부는 이번 결정에 2005년 도입된 PMS 조항(무역특혜연장법 504조)을 처음으로 적용했다. PMS는 조사당국이 수출업체가 제출한 원가 자료를 믿을 수 없다며 재량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근거로 사용된다. 상무부는 넥스틸이 유정용강관 주재료인 열연코일을 포스코에서 구매한 가격과 한국 정부의 산업용 전기요금 정책 등을 문제 삼아 덤핑 마진(수출국 내 판매가격과 미국 수출가격의 차)을 이전보다 높게 책정했다. 또한 “덤핑 마진을 계산할 때 한국 기업이 제출한 원가자료를 믿을 수 없다”며 아르헨티나 기업의 자료를 기준으로 삼아 관세율을 높였다. 아르헨티나 기업의 생산 원가는 한국 기업보다 높기 때문에 덤핑 마진이 더 많다. 박 대표는 “포스코 열연코일을 사용하고 있다는 이유나, 한국의 낮은 전기요금 등 원가 구조를 문제 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을 겨냥했나
상무부는 넥스틸 이외에 세아제강 2.76%, 현대제철을 포함한 나머지 업체에 13.84%의 반덤핑 마진율을 각각 적용하기로 했다. 발 빠르게 미국에 공장을 세운 세아제강은 미국 정부의 철퇴를 피해갔다. 유정용강관에 포스코 열연코일을 100% 사용하는 넥스틸이 가장 큰 피해를 봤다.
포스코 역시 외국산 탄소합금 후판에 대한 미국 정부의 관세 부과가 부당하다며 미국 국제무역법원에 제소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지난해 9월 포스코가 수출하는 열연강판에 57.1%의 상계관세를 부과했다. 여기에 반덤핑 관세율 3.9%를 합산하면 전체 부과된 관세율은 61.0%에 이른다.
한국산 제품에 대해 한국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해 미국 업체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게 이유다. 2015년 무역특혜연장법(TPEA) 제776조에 도입된 ‘불리한 가용 정보(AFA)’ 규정이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 조사당국이 덤핑이나 보조금의 조사 과정에서 성실하게 응답하지 않은 피소기업에 대해 불리한 추론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송재빈 철강협회 부회장은 “기업마다 적용받은 관세율이 달라 이해관계가 엇갈릴 수 있지만 PMS, AFA 등 미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이 규정은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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