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되겠지' 요행수만 바라온 대북 정책
결과는 북한의 볼모…이제라도 정공법 나서야
북한 원유 차단·전술핵 재배치 공조 서두르자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토머스 프리드먼은 국내에도 잘 알려진 미국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다. 그가 얼마 전 한국에 들렀다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모바일 속보를 받아봤다고 한다. 기겁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가 놀란 건 정작 따로 있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호텔 조식 뷔페식당을 가득 메운 무감각한 한국인들의 모습이다.
그가 귀국해 쓴 칼럼 제목이 ‘말에게 노래를 가르쳐 한국의 위기 해결하기(Solving the Korea Crisis by Teaching a Horse to Sing)’다. 칼럼은 우화(偶話) 한 꼭지로 마무리된다.
중세 시대다. 죄수가 왕에게 제안을 했다. 1년의 기회를 준다면 왕의 말이 노래를 할 수 있도록 가르치겠다고 말이다. 목숨을 보전한 죄수가 감방으로 돌아오자 평생이 걸려도 안 될 일이 아니냐고 다른 죄수가 물었다. 그의 답이 걸작이다. “어쨌든 1년은 더 살게 됐잖아.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을지 알아. 왕이 죽을지, 말이 죽을지, 아니면 내가 죽을지. 혹시 누가 알아? 말이 노래라도 부르게 될지.”
프리드먼의 지적이 어디 무감각한 한국 국민을 겨냥한 것이겠는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대하는 미국과 한국, 그리고 중국 정부의 태도가 마치 요행수라도 바라는 것 같다는 지적인 것이다. ‘그저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 그것이 지금까지의 대북 정책이라는 얘기다.
사실 한국 정부가 말의 노래를 기다린 건 오래된 일이다. 한국은 1991년 순진하게도 스스로 핵무장할 권리를 포기했다. 이듬해 북한과의 비핵화 공동선언은 오히려 북한이 마음껏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며 햇볕정책을 금과옥조로 삼아온 한국 정부다. 그렇게 25년을 방관자적인 태도를 취해온 결과가 바로 북한의 핵 독점 시대다.
6차 핵실험은 한국의 안보 환경이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최후의 단계까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화를 통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 북한이었다면 이 지경까지 오질 않았다. 남은 건 정공법뿐이다.
우선 외교적인 노력이다. 어떻게 해서든 북한에 실질적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 이란의 핵 포기도 결국 경제 제재 덕분이었다. 미국이 세컨더리 보이콧을 추진 중이라지만 쉽지 않다. 그래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새 대북 제재 결의가 중요하다. 북한에 대한 원유 공급 중단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이 중요한 이유다. 중국에 대한 외교적 노력은 말할 것도 없다.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을 실제로 제재할 수 있는 미국이나 일본의 단독 제재에도 서둘러 협력해야 한다.
그 다음이 소위 ‘공포의 균형’이다. 핵은 핵으로 맞서야 한다. 전술핵을 다시 들여오는 일이다. 걸림돌은 무엇보다 중국이다. 방어무기 체계인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놓고 그 난리를 친 중국이다. 이번엔 공격 무기다. 중국과의 관계는 더 악화할 수 있고 기업들은 중국에서 아예 퇴출 위기에 놓일 수도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정치하는 사람들의 각성이다. 하지만 여당 대표는 여전히 대화와 특사를 주장하고 있고, 여당 의원들은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며 전술핵 재배치를 반대한다. 제1야당은 국회를 보이콧한 채 장외 투쟁에 몰두하고 있고. 정신 차릴 때도 됐는데 말이다.
북한 핵미사일이 최우선적으로 겨냥할 곳은 멀리 괌이나 미국 본토가 아니다. 한국이다. 북한이 한국을 볼모로 잡은 것이 이번 핵실험의 결과다. 북한이 한국을 공격해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어쩔 것인가. 북은 핵과 미사일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뒤 미국과 담판을 벌이려 할 것이다. 한국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북·미 평화협정 시대가 된다면 그때는 또 어쩔 것인가.
저절로 되는 일은 없다. 안간힘을 써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게 국제 관계다. 다행스러운 일은 문 대통령이 지금은 더욱 강력한 압박과 제재를 가해야 하며 대화를 말할 때가 아니라고 선을 그은 점이다. 동맹과의 강력한 공조를 통해 능동적으로 대책을 수립할 때다. 고통이 수반된다. 국민과 기업도 감내할 자세를 갖춰야 한다. 말이 노래를 부르는 날은 결코 오지 않는다. 언제까지 저 망나니들을 머리에 이고 살 것인가.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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