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인선 과정서 노조 세 과시
참여연대 출신 사외이사도 요구
문재인 정부 믿고 노골적 경영 개입
KB금융 "선임 절차 문제없다"
일부선 '제2의 KB 사태' 우려도
[ 이현일 기자 ] KB금융그룹 계열사 노동조합(사진)이 차기 회장 인선 과정에 트집을 잡고 관련 절차를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또 시민운동가 출신인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미는 등 경영 개입을 본격화하고 있다. 금융계는 KB금융 노조의 이런 움직임이 친(親)노동계 성향의 정부를 등에 업고 차기 회장 인선 과정에서 노조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고 있다.
KB노동조합협의회(KB노협)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박용진·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차기 회장 인선 절차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KB노협은 국민은행, KB국민카드, KB손해보험, KB증권, KB캐피탈, KB신용정보, KB부동산신탁 등 7개 계열사 노조로 구성됐다.
박홍배 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은 “KB금융의 차기 회장 인선 절차는 윤종규 회장의 임기 만료 2개월 전인 오는 20일 시작하면 된다”며 “그런데도 서둘러 시작한 것은 윤 회장의 연임을 위한 날치기 일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윤 회장의 재임기간을 평가하는 금융감독원의 경영실태평가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헤드헌팅 회사를 통해 비공개로 외부 후보를 선정하는 등 불투명한 절차를 중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KB노협은 또 현직 회장이 임명한 사외이사가 차기 회장을 뽑는 현행 경영승계규정은 현직자에게 지나치게 유리하기 때문에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KB노협은 직원 대표 등으로 구성된 이해관계자 자문단이 회장 선임에 참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사측이 응하지 않으면 계열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회장 연임 찬반 설문조사 결과에 따라 윤 회장의 후보 사퇴운동까지 벌인다는 계획이다.
KB금융 이사회 사무국은 참고자료를 통해 노조의 주장이 터무니없다고 반박했다. 작년 7월 이사회에서 현직 회장에게 연임 우선권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경영승계규정의 제정을 결의했으며, 이 규정은 2016년 8월 시행된 ‘금융사 지배구조법’에 따른 ‘금융회사 지배구조 감독규정’에 따라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성에 중점을 두고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KB금융의 경영승계규정이 다른 금융지주의 관련 규정과 크게 다르지 않고 특별히 불공정하다고 보기 힘들다”며 “실질적인 회장 선임 절차인 회장 후보자군(롱리스트) 선정은 6개월 전에 이뤄졌는데 이제 와서 모든 절차를 되돌리라는 것은 무책임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KB노협은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하승수 변호사(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라는 주주제안을 추진하는 등 경영 참여를 본격화하기로 했다. 하 변호사는 참여연대에서 활동했으며 2004년 노조의 추천을 받아 현대증권 사외이사로 선임되기도 했다. 노조는 또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을 추천하는 위원회에서 회장 등 사내 경영진을 배제하도록 관련 규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다른 은행 관계자는 “노조가 고용, 임금, 복리후생 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이해할 만하지만 회장 인선 등 경영에 개입하는 것은 문제이며 뭔가 다른 속셈이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KB금융 관계자는 “KB는 10여 년간 외부 입김에 휘둘려 1등 자리를 놓쳤다가 최근에서야 겨우 분위기를 다잡고 있는 형편”이라며 “노조가 회장 인선에까지 개입하면서 ‘제2의 KB 사태’가 터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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