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통상임금 '노조 승소'
법원 '신의칙' 인정 안해
'상여금 불포함' 노사 합의도 사정 바뀌면 효력 없어
추가임금 4223억원 줘도 기아차 경영 문제 없어
경영위기 단편적 판단…노조 선의 전제해 논란
[ 이상엽 기자 ]
법원이 31일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에서 ‘회사 패소’로 판결한 것은 노조의 요구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인정 금액(4223억원)을 회사가 근로자에게 추가 지급하더라도 경영이 위태로워질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하지만 추가임금 부담이 기업 존립의 문제나 중대한 경영 위기를 초래하는지를 너무 단편적으로 평가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또 노조의 선의를 자의적으로 판단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회사 사정 넉넉…신의칙 인정 안 돼”
최대 쟁점은 재판부가 신의칙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였다. 신의칙은 ‘권리의 행사와 의무 이행은 신의를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는 민법 제2조 1항이다.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칙 인정은 “과거 노사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해 임금 수준 등을 결정했다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되더라도 이전 임금을 새로 계산해 소급 요구할 수 없다”는 의미다.
2013년 대법원은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소송’ 관련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면서도 신의칙을 근거로 과거분 소급 지급을 막았다. 신의칙의 가장 중요한 적용 조건은 통상임금 지급으로 기업이 중대한 재무·경영 위기를 맞는지 여부다.
기아차는 노조 주장대로 통상임금 적용 범위를 넓히면 부담해야 할 금액이 최대 3조원대에 달해 회사 경영에 어려움을 초래한다고 호소했다. 심각한 유동성 위기 등이 나타날 수 있는 경영상의 위험을 감안해 신의칙 적용을 주장해 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기아차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8~2015년 매년 순이익을 거뒀고 경영상태가 나쁘지 않아 추가 발생할 임금을 연차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노조의 선의를 전제한 판결” 논란
재판부의 판단이 모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기아차가 예측하지 못한 재정적 부담을 안을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경영상 중대한 어려움이 초래되거나 기업 존립이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가능성을 배제한 것이 적절했느냐는 논란이 나오는 배경이다.
노조의 선의를 전제한 재판부의 판단도 논란거리다. 재판부는 상호신뢰를 기초로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해온 노사 관계를 노조의 손을 들어준 이유로 꼽았다. 재판부가 “노조 측이 경영 위협이 발생하도록 방관하지 않고 발전적인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낙관과 추정을 앞세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이날 인정된 추가 임금은 근로자 1인당 3600만원으로 기아차 직원 평균 연봉(9600만원)의 38%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기아차 노조원들은 총 1조926억원을 추가 지급해줄 것을 요구했다. 소송 제기 시점을 기준으로 임금채권 청구 소멸시효(3년)가 지나지 않은 2008년 8월부터 2011년 10월까지의 임금 차액 등 6588억원에 이자 4338억원을 더해 계산한 금액이다. 이런 요구에 대해 재판부는 기아차가 근로자들에게 상여금, 식대를 통상임금에 포함해 재산정한 연장근로수당 등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정기상여금과 중식대는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으로서 통상임금”이라며 노조 요구를 대부분 받아들였다.
다만 영업직원에게 지급되는 일종의 활동비인 ‘일비’에 대해선 ‘영업활동’이라는 추가 조건이 성립돼야 지급되기 때문에 고정성이 없어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근로시간에 있어서 휴일 근무 및 야근 근무 등도 일부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기아차는 당장 거액의 충당금 적립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상엽 기자 ls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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