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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서 쫓겨난 배넌… 그 이후가 더 걱정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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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인사이드

작은 전쟁은 피해야 한다며 '중국과의 일전' 강조했던 배넌
월가·군 출신 신주류에 밀리며 미국 '군사옵션론' 목소리 커져
중국 대신 한국 희생양 될 수도



[ 워싱턴=박수진 기자 ] 스티븐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사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직후 사석에서 “내 임기는 앞으로 8시간 아니면 8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워싱턴 주류와의 싸움에서 지면 ‘단명(短命)’할 것이라고 미리 예상한 것이다. 그런 그가 지난 18일 전격 경질됐다. 발언 이후 7개월 만이니 꽤 오래 버텼다고 볼 수 있다.

보수성향 매체 위클리스탠더드의 편집장 크리스토퍼 캘드웰은 “배넌은 백인 우월주의자나 인종주의자와는 거리가 먼 급진성향 보수 개혁파였다”며 “그는 워싱턴 주류들에게 시기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고 평가했다.

배넌은 미 건국 초기 주(州)단위 자치권이 보장되는, 기독교·백인 중심의 미국 사회 재건을 꿈꿨다. ‘티파티2.0 버전’이다. 그러나 순환론적 세계관을 가졌다는 점에서 이보다 더 급진적이었다. 그는 미국이 80~100년 간격으로 전쟁 위기에 처한다고 믿었다. 독립전쟁(1776년), 남북전쟁(1861년), 2차 세계대전(1939년)에 이어 앞으로 10년 내에 네 번째 전쟁을 치를 것으로 예상했다. 대상은 중국이고, 중국과의 싸움에서 지면 미국은 영영 일어서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배넌은 정권 초부터 통상·정치·이민·규제 분야에서 ‘미국의 힘’을 키우는 개혁 이슈를 몰아붙였다. 그는 한반도 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중국과의 큰 싸움을 위해 사소한 전쟁은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리아 공습, 아프가니스탄 추가 파병, 북한 선제타격 등을 줄기차게 반대한 것도 그다.

그는 “한국전쟁 발발 시 엄청난 인명피해는 차치하고라도 최소 2조달러의 비용이 소요된다”며 계산에 빠른 트럼프를 설득했다고 한다. 경질되기 직전 언론 인터뷰에서는 “서울에 있는 천만 명이 죽지 않을 방법이 없는 한 군사적 옵션은 없다. 잊어버려라”고 단언했다.

워싱턴포스트는 23일 “배넌의 퇴출은 군산복합체의 승리”라고 보도했다. 백악관 내 월가 및 군부 출신 신(新)주류가 그를 찍어냈다는 분석이다. 헤게모니가 바뀌면서 미국 우선주의 방향도 크게 바뀔 것으로 분석했다. 중국과의 한판을 대비한 고립주의·강경 통상주의 노선 대신 당면한 작은 분쟁과 이익에 집중하는 개입주의·국제주의(온건 통상주의)로 갈 가능성이다.

징후는 벌써부터 나타난다. 아프가니스탄 추가 파병이 결정됐고, 시리아 추가 공습도 시간 문제라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중론이다. 북핵과 관련해서는 ‘예방전쟁론’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물론 당장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총·포탄만이 불안과 공포를 낳는 것은 아니다. 워싱턴의 한 금융계 인사는 “북핵사태를 보자면 가슴이 타들어가 잠을 못 잘 지경”이라고 했다.

북한과 미국 간 군사적 대치가 고조돼 ‘미군·미국인 소개령’ 언급이라도 나오는 날이면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는 저리 가라 할 대혼란에 빠질 것이란 지적이다. 이 인사는 “한국은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자금이탈로 초토화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한국은 전쟁을 막을 힘은 고사하고, 위기에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다. 자금이탈 때 급전을 융통할 수 있는 변변한 ‘통화스와프 계약’조차 없다. ‘미국 우선주의’ 설계자 배넌이 퇴출됐으니 미국의 강압적인 외교·통상정책도 바뀔 것이라며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이유다.

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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