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행성 뇌질환 치료물질 엑세나타이드 특허 보유
오는 11월 오송 1공장 완공...내년 4월께 시약 생산
英 연구팀, 펩트론에 시약 공급 제안
"최근 발표된 논문을 계기로 파킨슨병 치료제에 대한 기술수출 논의가 다시 시작됐습니다. 이번 논문을 통해 확인된 '엑세나타이드(exenatide)' 가능성을 감안하면, 지속형 엑세나타이드는 파킨슨병에 있어 비아그라 수준의 파괴력을 가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지난 21일 대전 유성 본사에서 만난 최호일 펩트론 대표(51·사진)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해외에서 날아든 낭보 때문이다.
영국 런던대학교(UCL)의 폴티니 교수 연구팀은 지난 3일 당뇨병 치료에 쓰이는 엑세나타이드가 파킨슨 환자의 증상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세계적 임상학술지 '란셋(The
Lancet)'에 발표했다. 또 엑세나타이드를 파킨슨 환자에 48주 동안 투여한 후 12주간 효과가 지속됐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번 임상의 의미는 당뇨병 치료물질 엑세나타이드의 파킨슨병 치료 가능성이다. 퇴행성 뇌질환인 파킨슨병은 치료제가 없는 병이다. 현재 파킨슨병 환자들에게 처방되는 약은 일시적인 증상 완화 효과만 있을 뿐 병의 진행은 막지 못하고 있다. 또 시간이 갈수록 약효가 떨어지는 약효소진 현상을 보인다.
이번 연구가 호재인 것은 엑세나타이드의 퇴행성 뇌질환 치료 관련 세계 특허를 펩트론이 가지고 있어서다. 엑세나타이드를 파킨슨이나 알츠하이머 등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는 펩트론에 있다.
英 연구팀, 350명 임상서 펩트론에 시약 공급 제안
최 대표는 "폴티니 교수팀은 350명의 대규모 후속 임상을 준비하고 있다"며 "이 임상에 사용될 약을 펩트론이 공급해 줄 것을 제안한 상태"라고 말했다.
펩트론은 한 번 투여로 일주일 이상 약효가 지속되는 지속성 엑세나타이드를 가지고 있다. 폴티니 교수팀이 최근 임상에 사용한 약은 아스트라제네카의 '바이두레온'이다. 바이두레온은 당뇨병 치료제로 허가받은 주 1회 제형의 약으로, 엑세나타이드가 주성분이다.
최 대표는 "폴티니 교수팀도 엑세나타이드의 퇴행성 뇌질환 특허를 펩트론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최근 연구를 바이두레온으로 진행한 것은 우리가 임상용 약을 공급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오는 11월 오송 1공장이 완공되면 임상약 공급이 가능해진다. 내년 4월께 임상시약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폴티니 교수팀의 다음 임상은 2019년 시작될 예정이다.
펩트론은 2014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으로부터 엑세나타이드의 퇴행성 뇌질환 치료 특허의 세계 독점실시권을 인수했다. 엑세나타이드의 퇴행성 뇌질환 치료 가능성을 처음 발견한 것은 NIH였다. NIH는 펩트론이 보유한 지속성 엑세나타이드에 관심을 가지고 공동연구를 제안했고, 이를 계기로 관련 특허를 사들일 수 있었다. 2014년부터 NIH와 공동개발협약(CRADA)를 체결하고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의 상용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퇴행성 뇌질환 환자들은 매일 약을 먹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지속성 의약품에 대한 필요성이 컸던 것이다.
최 대표는 "파킨슨병 치료제와 관련해 2년 전부터 글로벌 제약사의 접촉이 있었다"며 "이 회사도 영국에서 이번 임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좋은 결과가 나오면서 기술수출 관련 협상이 재개됐다"고 했다.
NIH를 매료시킨 '스마트데포'
NIH가 엑세나타이드의 용도특허를 이전한 배경에는 펩트론의 '스마트 데포' 기술이 있다.
최 대표는 연세대학교 생화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LG화학 바이오텍연구소(현 LG화학 생명과학사업본부)에서 근무했다. 연구소에서 에이즈 치료제와 실험실 자동화 시스템을 연구하다 자동화 시스템을 가지고 창업을 결심했다. 그러나 회사를 창업했던 1997년 외환위기 사태가 터졌다. 예정됐던 투자 유치가 무산되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돈이 덜 들어가는 펩타이드 합성 사업을 시작했다. 에이즈 치료제 개발을 위해 펩타이드 합성을 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펩타이드는 2개 이상의 아미노산이 연결된 물질로 생체 신호 전달 등에 관여한다. 아미노산은 우리 몸을 이루는 단백질 분자의 기본 구성단위이기 때문에 화학합성 의약품에 비해 부작용이 적다. 다만 인체에서 빨리 분해된다는 단점이 있다. 펩타이드를 기반으로 한 의약품은 지속시간이 짧은 것이다.
때문에 펩타이드 의약품을 개발하는 기업들은 약효지속성 기술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약효 성분을 서서히 분해되는 물질로 둘러싸 미립구(데포)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펩트론의 '스마트 데포'는 미립구 기술을 이용해 약효의 지속시간을 늘리는 한편, 초음파를 이용해 더 작고 균일한 미립구 생산을 가능케 했다.
더 작은 미립구로 더 얇은 주사바늘을 사용할 수 있어, 환자의 거부감을 줄일 것으로 기대된다.
글로벌 제약사와의 기술평가협약도 순항
펩트론은 지난해 10월 글로벌 제약사와 기술평가협약을 체결해 업계에서 화제가 됐다. 글로벌 제약사는 신규 펩타이드에 '스마트 데포' 기술을 적용해 차세대 지속성 당뇨·비만 치료제 개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스마트 데포가 차세대 비만·당뇨 치료제 개발에 적합하다고 평가되면 기술수출 계약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당시 이 글로벌 제약사는 펩트론 외에 두 곳과도 기술평가협약을 맺었다.
최 대표는 "올 초 3가지 제형을 개발해 발송했고, 지난 5월 글로벌 제약사로부터 펩트론이 최종선택됐다"며 "추가 테스트가 내년 2월에 끝나고 이를 통과하면 내년 중순께 본계약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나머지 두 곳은 탈락했다.
현재 당뇨·비만 치료제 개발에는 아스트라제네카 머크 사노피 얀센(한미약품 기술 도입) 등이 경합 중이다. 글로벌 제약사가 펩트론을 최종 확정한다면 오송공장에서 임상시약을 생산할 계획이다.
펩트론에 있어 올 11월 완공이 예상되는 오송 1공장의 의미는 크다. 그동안 임상시약의 생산 문제로 파킨슨병 당뇨 등의 임상이 지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펩트론은 파킨슨병 치료제와 관련해 2014년 국내 임상 2상을 승인받은 상태다. 유한양행에 한국 판권을 이전한 당뇨병 치료제는 국내 2상을 완료하고 3상과 해외 2상을 준비 중이다.
최 대표는 "공장 완공 이후 내년에 파킨슨병 2상과 당뇨병 3상을 시작할 계획"이라며 "파킨슨의 경우 영국의 연구결과를 적극 활용해 최적의 임상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뇨는 개발 경쟁이 심하지만 파킨슨병은 권리 확보를 통해 경쟁자가 없고, 영국 연구팀과의 공동 연구 등을 통해 다양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어 기대감이 더 크다고 했다.
펩트론은 임상시약을 생산할 수 있는 한국우수의약품제조기준(KGMP)급 오송 1공장을 설립한 뒤 수요를 예측해 완제의약품 생산을 위한 선진국우수의약품제조기준(cGMP)급의 오송 2공장을 설립할 계획이다.
그는 "개발에 성공하면 지속형 엑세나타이드는 파킨슨병에 있어 '비아그라'와 같은 약이 될 것"이라며 "현재 파킨슨병 치료제 이름에 대한 임직원 공모에 들어갔다"고 했다. 최근 바빠졌지만 기분 좋은 바쁨이라며 웃음을 보였다.
대전=한민수 기자 hm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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