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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문무일 검찰총장의 '바른 검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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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 지키는 바른 검사 드문 서글픈 현실
칼잡이보다 실력 갖춘 겸손한 검사 돼야

박해영 지식사회부 차장 bono@hankyung.com



대한민국 검사 선서는 10년이 채 안 됐다. 2008년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의 아이디어였다. 그 전엔 검사도 일반 공무원 선서를 했다. 법을 지키고 국민에게 봉사하겠다는 59자 짤막한 글이었다. 의사의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모델이 됐다. 세 배 넘게 분량이 늘어난 193자의 검사 선서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영광스러운’ ‘막중한’ 등의 수식어를 동원한 선서는 요약하자면 ‘용기있는, 따뜻한, 공평한, 바른 검사가 되겠다’는 내용이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마지막 덕목인 바른 검사에 꽂힌 듯하다. 임명장을 받고 대통령 앞에서 검찰개혁에 저항하는 듯한 뉘앙스의 한시를 읊은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겐 바르게 잘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취임식에서도 ‘투명한 검찰, 바른 검찰, 열린 검찰’을 3대 과제로 제시했다. 여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선 “바르게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첫 기자간담회에서도 “바른 검찰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이달의 바른 검사상이라도 만들 기세다.

바르게 일하는 건 어렵지 않다. 원칙대로 하면 된다. 새 검찰총장이 저렇게 강조하는 건 바른 검사 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을 지낸 임수빈 변호사도 같은 얘기를 한다. 그는 지난 9일 출범한 법무부의 법무·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이다. 임 변호사는 “수사는 잘하는 것보다 바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검사는 칼을 휘두르는 무사가 아니라 인권을 지키는 문관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현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빨리 자백을 받아내 재판에 넘기려는 욕심은 종종 매뉴얼을 잊게 한다. 만족할 만한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다른 사안까지 끌어들여서 이른바 별건으로 압박하는 경우가 흔하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은 드물다. 마음놓고 ‘탈탈’ 털려면 구속이 필수다. 검사들이 구속영장에 집착하는 이유다.

과거엔 구속까지도 필요없었다. 1970~1980년대 일선 검사로 일한 한 대형 로펌의 대표변호사는 “문 걸어 잠그고 윽박지르면 술술 불었다”고 회고했다. 바쁜 사람 불러놓고 하루 종일 말도 붙이지 않고 앉혀놨다가 다음날 다시 오라고 하는 건 그나마 약과다. 가족을 입에 올리며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검사와 수사관 앞에서 모멸감을 피하기는 어렵다. 피의자는 고사하고 참고인 신분으로 불려가도 수모를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무리한 수사의 결과가 좋을 수는 없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5년 무죄사건 7191건 중 23%인 1624건은 법리오해, 증거판단오류 등 검사의 실수였다. 2014년 16%보다 더 나빠졌다.

이명재 전 검찰총장은 선후배들이 꼽는 ‘당대 최고의 검사’다. 법무부 장관을 지낸 정성진 양형위원장은 “곱상한 얼굴로 조곤조곤 말하면서 젠틀하게 수사하는데도 피의자들이 꼼짝 못하고 자백했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문관 스타일의 검사다. 발뺌 못 할 증거로 피의자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정 위원장은 “상대방을 설득하는 기술이 탁월했다”고 평가했다. 인권을 강조하는 문 총장의 바른 검사상에 가깝다.

문 총장 스스로도 일선에서 수사의 정석을 보여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과거 잘못된 검찰의 관행을 누구보다 부끄러워하고 있다. 중요한 사건의 수사동기와 방법 등을 전문가들이 검증하는 수사심의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선제적으로 제안한 배경일 것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검찰 셀프 개혁’의 한계, 청와대·법무부와 힘 겨루기 우려 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문 총장의 다짐대로 이번에야말로 바른 검찰로 거듭날지 지켜보는 국민의 눈매가 매섭다.

박해영 지식사회부 차장 bon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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