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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로버트 리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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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 1861~1865)을 빼놓고 미국을 얘기하기는 어렵다. 정치와 경제, 기술과 문화에 걸쳐 세계 최강대국인 현대 미국을 만들어낸 대전환점이었다. 넓은 평원이 피로 물든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남군의 세가 꺾이면서 미국 내전은 대세가 기울어진다.

이 전쟁을 끝낸 당사자가 북군 사령관 율리시스 그랜트와 남군 사령관 로버트 리다. 승자가 된 그랜트는 뒤에 18대 미국 대통령이 됐고, 패장 리 장군은 버지니아주 렉싱턴의 워싱턴대학(현재 워싱턴앤리대학) 학장으로 변신해 생을 마감했다.

미국사 연구 가운데는 남북전쟁의 또 다른 승리자 또는 공로자로 리를 지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링컨의 민주주의도 중요하고 그랜트도 의미있는 역할을 했지만, 패배를 인정한 리의 분명한 자세 덕분에 미국이 전면 전쟁의 후유증을 곧바로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패전을 인정하는 서류에 서명한 뒤 리는 “남은 병사들과 게릴라전을 벌이라는 명령을 내려달라”는 휘하 포터 알렉산더 장군의 간청을 단호히 거부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리가 북군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북부와 다른 전통의 남부지역이 ‘하나의 미국’에 쉽게 동참했을까. 미국이 리를 결코 ‘패장’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여러 곳에서 보인다. 전쟁발발 전까지 리 소유였던 버지니아 북단 알링턴의 농장은 종전 뒤 연방 소유가 되면서 국립묘지가 됐는데, 경내의 전망 좋은 고지대에 있던 리 저택이 ‘알링턴 하우스’라는 기념관으로 잘 관리되고 있다. 인근에는 ‘리 하이웨이’라는 이름의 간선도로도 있다.

그의 존재는 동상으로도 남아 있다.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의 시민 공원에 세워진 말 탄 형상이다. 샬러츠빌은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고향으로, 미국 주립대학 중 최상위권에 드는 버지니아대학이 있는 전통 있는 도시다.

지난 주말 백인우월주의 단체들과 이에 반대하는 시위대 간에 유혈 충돌이 빚어진 곳이 샬러츠빌 리 동상 주변이다. 백인우월주의 그룹의 20세 남성이 차량을 몰고 반(反)인종주의 시위 행렬을 덮치면서 수십 명 사상자까지 발생했다.

민주당 기반 샬러츠빌 시가 지난 2월 내린 리 동상 철거 결정이 발단이었다. 시는 지난 6월 리와 남군의 전설적인 용장(勇將)으로 리의 오른팔 격이었던 토머스 조너선 잭슨의 이름을 딴 시내의 공원 두 곳도 ‘해방 공원’ ‘정의 공원’으로 바꿔버렸다. 이에 리를 영웅으로 추앙해온 남부 기반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폭발한 것이다. 리가 되살아난다면 뭐라고 할까.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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