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까지 '격자가 있는 바다'전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 김경갑 기자 ] 연일 폭염이 이어지면서 유난히 바다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화가들에게 바다는 역동적 움직임을 지닌 공간이기에 오랫동안 미술 소재로 즐겨 사용해왔다. 프랑스 음악가 클로드 드뷔시는 일본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작품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에서 영감을 받아 명곡 ‘바다’(라 메르)를 작곡하기도 했다.
자유와 그리움, 낭만이 가득한 공간인 바다를 식민지 역사와 난민, 자본주의적 욕망의 공간으로 바라본 이색 전시회가 마련됐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가 오는 20일까지 펼치는 ‘격자가 있는 바다(Gridded Currents)’전이다.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상품화돼버린 바다의 현실을 ‘격자가 있는 바다’로 은유했다.
싱가포르 작가 찰스 림이용(44)을 비롯해 스웨덴 출신의 니나 카넬(38)과 루노 라고마르시노(40), 한국의 김아영 등 네 명은 제국주의 역사와 국가주의에 함몰된 바다에 시선을 짙게 드리우면서 미학적 우회 경로를 흥미롭게 제공한다.
예컨대 루노 라고마르시노는 슬라이드 사진 80장을 한 장씩 보여주면서 지중해 바다 이미지에 생긴 구멍이 점차 커져 결국에는 화면에 빛만 남게 되는 2015년작 ‘바다 문법’을 출품했다. 작가는 기회의 공간이었던 바다가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세워진 국경으로 변해 난민들에게는 사선(死線)의 공간이 돼버린 현실을 꼬집는다.
김아영 씨는 인류 역사에서 확인되는 재난 사고를 모티브로 제작한 작품 ‘이 배가 우리를 지켜주리라’를 내놨다. 파리의 유명 오페라극장과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지하 공간의 풍경을 빠르게 교차 편집한 영상 작품이다. 무용수들의 춤과 함께 ‘가만 있으라’는 노래 가사가 물이 가득 들어찬 지하 공간의 공포감과 중첩되며 세월호 참사의 트라우마를 일깨운다.
찰스 림이용은 벽이나 분리, 단절의 의미로 바다에 주목했다. 그는 싱가포르 북동쪽 경계지역을 따라 세워진 바다 장벽을 기록한 사진, 바다를 메워 간척하는 영토 확장 사진 등을 걸어 바다가 첨예한 국가주의적 경쟁 공간이란 사실을 가볍게 건드린다.
니나 카넬은 프랑스 리옹과 서울 근교에서 주워 모은 케이블선을 활용한 설치 작업을 내놨다. 선이 없는(wireless) 상태를 지향하는 디지털 사회지만 바다 밑에는 갈수록 케이블선이 증가하는 이율배반적 상황을 상기시킨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현진 전 아르코미술관장은 “제국주의의 헤게모니와 수탈의 역사, 국가주의의 관점에서 바다 공간을 시각예술로 접근한 전시회”라고 설명했다. (02)735-8449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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