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철수론' 나오는데 한국 정부는 무대응
정부는 '코리아 패싱' 아니라지만…'샌드위치' 못 벗어난 한국 외교
[ 정인설 기자 ] 북핵 문제를 놓고 미국과 중국이 정면 충돌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을 손 좀 보라”고 중국을 압박하지만 중국은 “어디까지나 미국과 북한의 문제”라고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중국의 ‘수수방관’ 속에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강도를 높이고 있다. 최대 우방국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ICBM급 미사일 발사 후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전화통화를 했다.
북핵 외교에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 “북핵 협상 테이블에 주한미군 철수 얘기까지 올려야 한다”(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는 주장이 나오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아무런 외교적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북한 문제의 운전대를 잡겠다”고 했지만 갈수록 북핵 외교 무대에서 밀려나는 모양새다. ‘코리아 패싱’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최근 “대화의 시간은 끝났다”고 했지만 한국 정부는 여전히 남북 대화 노선을 버리지 않고 있다.
김열수 성신여대 국제정치학과 교수는 “지금은 줄타기 외교를 하는데 그럴 때가 아니다”며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선명한 외교노선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사정권에 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인 ‘화성-14형’을 발사한 직후 한반도 주변 정세가 급박히 돌아가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양국 정상 간 52분 통화를 통해 대북 압박 강화를 약속하며 동맹 관계를 과시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을 직간접적으로 두둔하며 미국을 비판하고 나섰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며 줄타기 외교를 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곳에 확실히 자리를 잡지 못하고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은 중국, 러시아와 각을 세우고 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선봉에 섰다. 틸러슨 장관은 지난달 28일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의 중요한 경제적 조력자로서 역내 위협 증대와 세계정세 안정에 독특하고 특별한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들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으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달 25일엔 북한·이란·러시아 제재 법안을 일괄 처리하면서 러시아 제재를 승인했다.
이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는 발끈했다. 동시에 서로를 비호하며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북한의 화성-14형은 ICBM이 아니라 중거리미사일(IRBM)”이라며 “냉정을 찾으라”고 주문했다. 이어 러시아에 있는 미국 외교관 수백 명에 대해 추방명령을 내렸다. 중국은 1일 환구시보를 통해 미국의 문어발식 외교를 비난하며 러시아의 미국 외교관 추방조치를 옹호했다.
신냉전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만큼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여전히 모호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한·미 동맹을 공고히 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긴밀하게 유지한다는 명분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대표적 외교 노선으로 표방해온 ‘전략적 모호성’이다. 갈등이 없거나 크지 않은 시기엔 중립적 외교 정책으로 각광받을 수 있지만 지금처럼 주변 강국 간 갈등이 커질 때엔 아무 쪽에도 속하지 못하며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코리아 패싱’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 정부는 오는 6~8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계기로 코리아 패싱 우려를 불식시키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ARF에서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 외교장관과의 양자회담을 하면 자연스럽게 오해가 풀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현재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외교정책이 제한적인 게 사실”이라며 “지금 상황에선 주변국과 충분한 대화를 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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