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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 한우물 대구 풍국면 '100년 국수기업'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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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만에 생산라인 증설, 생산량 연간 1만2000t으로…올 매출 110억 기대
증권맨 출신 최익진 대표, PB 상품·OEM으로 가업 풍국면 되살려



[ 오경묵 기자 ]
1933년 설립돼 84년의 역사를 지닌 국내 최고(最古) 국수 제조기업인 대구의 (주)풍국면이 생산라인을 두 배로 확대하면서 100년 기업에 도전장을 냈다.

대구 노원동의 풍국면(대표 최익진)은 생산라인을 자동화한 2002년 이후 15년 만에 생산라인을 증설해 생산량을 연간 6000t에서 1만2000t으로 늘린다고 26일 발표했다.

풍국면은 1933년 신재순 씨가 환길제면이란 상호로 국수를 만들었다. 삼성의 모태인 삼성상회에서 이병철 회장이 별표국수를 제조한 것보다 5년 빠르다. 별표국수는 1960년대 시장에서 사라졌지만 풍국면은 별표국수 거래처를 승계하면서 생존해왔다. 이 회사는 1978년 최익진 대표의 선친인 최정수 씨가 인수하면서 풍국면으로 사명을 바꿨다.

1980년대 초 대구에는 풍국면을 포함해 30여 개의 국수업체가 전국 국수의 50%를 생산했다. 1970년대 풍국면은 연매출 30억원대를 기록하며 국내 건면 시장의 30%를 차지했다. 당시 풍국면 TV 광고모델은 당대 최고 배우인 신성일, 엄앵란 씨였다.

1985년 식품 대기업이 국수시장에 뛰어들면서 풍국면은 위기를 맞았다. 이때 풍국면 구하기에 나선 사람이 최 대표다. 최 대표는 미국 위스콘신대 MBA(경영학석사)를 마치고 증권회사에서 전환사채 업무를 담당하던 증권맨이었다. 최 대표가 가업을 이어받은 1993년 회사 부채는 13억원으로 매출(12억원)보다 더 많았다. 최 대표는 “회사를 맡고 2년이 지나서야 직업이 바뀐 걸 실감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다”며 “1t 트럭을 몰고 동네 구멍가게까지 찾아다니며 영업망을 재건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유통혁신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유학 시절 경험한 월마트를 보고 당시 국내에도 들어서기 시작한 대형마트 공략에 승부수를 띄웠다. 대형마트와 거래를 트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대형마트 본사 인근 찜질방에서 며칠 밤을 지새우며 최 대표가 생각한 것은 대형마트 자체브랜드(PB) 상품이었다. 1995년 말 풍국면은 이마트에 PB제품을 제안해 납품권을 따냈다. 최 대표는 “사실상 이마트 PB 1호였고 이때부터 회생의 발판이 마련됐다”고 했다. 코스트코에도 납품이 이어지고 2013년 CJ의 제일제면소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까지 따내면서 2014년 매출이 106억원까지 올라갔다. 쏟아지는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지난해 말 생산라인 증설을 시작했다. 84년 만에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한 셈이다.

최 대표는 “회사가 아무리 어려워도 손쉽게 돈을 벌기 위해 제품의 질을 타협하지 않았다”며 “지금까지 한 번도 영업처를 뺏겨본 적이 없다”고 소개했다. 최 대표는 일본에 이어 올해부터 중국 월마트 계열인 샘스클럽에도 수출을 시작했다. 최 대표는 “일본에서도 기계면 기술을 배우기 위해 방문한다”며 “국수에 관한 한 세계 최고 기업으로 키우겠다”고 강조했다.

대구=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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