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도 성공의 답은 조직에 있어
ING처럼 부서 칸막이 없이 협력·개선하며
급변하는 고객·환경에 즉각 대처 가능해야
최원식 < 맥킨지 한국사무소 대표 >
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 2001년은 각별한 해다. 당시 한계가 많은 폭포(waterfall)식 개발 방식에 반기를 든 17명의 개발자는 미국 유타주에 모여 완전히 새로운 개발 원칙인 ‘애자일(agile·민첩한) 선언문’을 만들어 발표했다. 기존 개발 방식이 정해진 동선을 달리는 기차라면, 애자일 방식은 내비게이션이 수시로 새로운 경로를 탐색해 이동하는 자동차와 같다. 소프트웨어 개발에 혁명을 일으킨 ‘애자일’이 조직 혁신의 방법론으로 경영자들로부터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디지털 정보와 첨단 애널리틱스(분석기술) 확산에 힘입어 많은 기업이 빅데이터 기반 알고리즘을 만들어 생산 및 물류 공정의 효율성을 개선하거나, 소비자를 더 세부적이고 즉각적으로 분석해 이를 상품 기획 또는 영업·마케팅에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혁신 활동을 전사적이고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기업은 드물다. 조직 전체가 급변하는 고객과 환경에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애자일 조직으로 거듭나야 하기 때문이다.
애자일 조직은 어떤 모습인가? 경직된 룰과 프로세스가 조직 구성원의 활동을 강제하는 기계적인 조직이 아니라 조직의 사일로와 시스템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협력하며 진화하는 살아있는 조직이다. 애자일 조직의 리더는 상명하달, 상명하복과 같은 힘의 논리보다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고 목표 달성에 최적화된 환경을 조성하는 촉매적 역할을 통해 조직을 움직인다. 조직 구성원을 복잡성, 불확실성과 같은 조직적 스트레스 요인으로부터 보호하려 하기보다 오히려 적절히 노출시켜 스스로 대응하게 한다. 또한 계획에 따른 목표 달성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빠르고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것에 가치를 둔다.
애자일 조직의 사례로는 고객 중심의 다기능팀 형태로 운영되는 다국적 금융회사인 아이엔지(ING), 150여 명이 스스로 관리하는 ‘부족’들로 구성된 음악·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 스포티파이(Spotify), 3명의 부회장이 6개월 단위로 최고경영자(CEO) 역할을 교대로 수행하는 중국 네트워크 통신 업체 화웨이, 40여 명의 지원인력으로 9000여 명의 간호사 조직을 움직이는 네덜란드 가정간호 회사 부르트조르그(Buurtzorg)가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애자일 조직이 디지털 트렌드가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존재해왔다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애자일 역량이 필요하지만 조직이 애자일해지면 디지털 트렌드뿐 아니라 다양한 외부환경의 변화에도 발 빠른 대응이 가능하다.
여러 사례가 보여주듯 애자일 조직은 하나로 정해진 모형이 없다. 나만의 애자일 조직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애자일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고려해야 할 게 있다. 우선 사업 전반에 걸쳐 디지털과 첨단 애널리틱스가 제공하는 크고 작은 기회를 총체적으로 진단해볼 필요가 있다. 세부 단위의 유스케이스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은 실무진의 몫이겠지만, 사업의 성과와 경쟁력에 임팩트가 큰 기회를 전사적 목표와 연결시키고 혁신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조직을 움직여 추진하는 것은 CEO가 직접 챙겨야 할 일이다.
둘째, 애자일 역량이 체화되려면 조직의 구조, 프로세스 및 인력을 동시에 건드려야 한다. 조직 구조와 역할상의 변화뿐만 아니라 일하는 방식, 의사결정 프로세스, 회의 운영, 성과 관리, 역량 및 조직 문화적인 요소가 한꺼번에 변해야 한다. 최근 시행한 맥킨지 분석에 따르면 7가지 이상의 조직적 요소가 동시에 변화한 기업이 새로운 조직으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할 확률은 그렇지 못한 기업 대비 3배나 높았다.
셋째, 변해야 할 부분과 유지해야 할 부분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조직이 애자일하게 움직이려면 조직의 ‘안정적 기반’이 강해야 한다. 이는 변화의 노력이 실패하더라도 사업을 지탱할 굳건하고 차별적인 조직운영과 경쟁의 바탕이자 변하지 말아야 할 ‘믿을 구석’인 것이다.
나의 조직은 ‘애자일’한가? 애자일 선언문에 나와 있는 12가지 원칙을 일반화해 대입해보면 가늠할 수 있다.
최원식 < 맥킨지 한국사무소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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