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삽니다
서울 대학로 임대료 못 버티고 2년 전 단양군 만종리로 '귀농'
현실 만만찮아…단원 떠나기도…"작품 완성되는 과정이라고 믿어"
200차례 공연…주민들도 참여
[ 고은이 기자 ]
30년 역사의 대학로극장은 2015년 4월 충북 단양군 영춘면 만종리로 귀농했다. 서울 혜화동 대학로의 치솟는 임대료를 견디지 못했다. 낮에 농사를 짓고, 밤엔 연극을 하면 살 길이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2년이 흘렀다. 함께한 단원 중 일부는 극단을 떠났다. 매일 밤 올리던 공연은 1주일에 두 번으로 줄었다. 극단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단양군 산골 마을 한쪽에 있는 만종리 대학로극장을 찾았다.
지금 만종리 대학로극장의 정식 단원은 8명이다. 허성수 총감독(사진)과 이주영 PD를 포함한 배우 네댓 명이 만종리에 상주한다. 나머지는 서울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공연 연습을 한다. 마을에서 내어준 집 한 채, 빈집을 임차해 수리한 두 채, 이렇게 총 세 채에 감독과 배우들이 나눠 산다.
매주 금·토요일 저녁 야외 무대에선 이들이 준비한 연극이 공연된다. 가족극 ‘다녀왔습니다’, 단양 배경의 옛 얘기를 재해석한 ‘온달과 평강’ 같은 작품이다. 관객은 적을 땐 10여 명, 많을 땐 200명도 온다. 철마다 작품을 바꾼다. 연극이 끝나면 관객과 배우들은 어울려 술 한 잔 나눈다. 작품 얘기도 하고, 사는 얘기도 한다.
이들의 낮은 시끌벅적한 주말 저녁과는 조금 다르다. 주업이 농사다. 3000평의 농지를 임차해 옥수수와 마늘 등을 심었다. 첫해엔 수박 토마토를 했다. 두 번째는 콩 밀 마늘을 심었다. 올해는 양파 콩 고추 마늘 등의 농사를 짓고 있다. 농사 지은 작물을 내다 팔기만 하는 건 아니다. 수확한 콩으로 두부도 쑤고, 직접 기른 양파로 양파즙도 만들어 판다. 연극 관객이 곧 고객이다. 그렇게 모은 관람료(어른 1만원, 음료 포함), 음식과 농작물을 판 돈으로 단원 8명이 먹고산다. 물론 넉넉하지는 않다.
대학로극장의 역사가 시작된 건 1987년 6월. 서울 대학로에 문을 열었다. 한적한 주택가였던 대학로를 소극장 거리로 만든 주축. 1992년 창작극 ‘불 좀 꺼주세요’가 대히트를 치면서 20만 명을 불러모았다. 28년을 터줏대감으로 버텼다. 2년 전 대학로를 떠나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지어보자고 제안한 건 허 총감독이다. 극장 임대료가 월 150만원에서 440만원까지 뛰었다. 관람료 수익은 그에 한참 못 미쳤다.
허 총감독의 고향이 단양 만종리다. 단양은 충북 대표 관광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지만 잘만 하면 뭐가 될 것도 같았다. 손해볼 것도 없었다. 그만큼 궁지에 몰려 있었다.
연극쟁이들에게 농사일은 어려웠다. 첫해 지은 수박 농사는 완전히 망했다. 그 다음해 심은 옥수수는 사실 야심작이었다. ‘여름 축제 때 사람이 많이 오면 그때 옥수수를 삶아서 팔자.’ 수확을 위한 트럭도 구했다. 문제가 생겼다. 축제 시기에 비해 옥수수가 너무 빨리 여물었다. 1주일만 지나도 딱딱해져 맛이 없어진다고 했다. 극단이 뒤집어졌다. 부랴부랴 옥수수를 따서 단양과 제천 시내를 다 돌아다녔다. “200만원 쓰고 고생까지 했는데 달랑 12만원 벌었습니다. 꿈이 산산조각났죠.”(허 총감독)
극단의 자립은 쉽지 않았다. 처음엔 월급조차 제대로 보장하지 못했다. “처음엔 다들 으?으? 했는데, 현실적인 벽이 높았습니다. 시골에서 평생 연극하는 것도 막막하고요.” 단원들은 밤마다 얘기를 나눴다. 그 과정에서 극단을 떠난 단원들도 있다. 2년 전 15명에서 지금 8명으로 줄었다. 새로 합류한 이들도 있다. 지금 극단의 살림을 맡고 있는 이 PD 같은 사람들이다. 도시 출신인 이 PD는 연극과 만종리에 반했고, 다니던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내려와 단원이 됐다.
이 PD가 합류해 맡은 건 극단의 ‘생계’다. 연극도 좋지만 일단 경제적 자립이 중요하다고 봤다. 매일 밤 하던 공연은 1주일에 이틀(금·토요일)로 줄였다. 최근 히트작은 직접 키운 양파로 만든 양파즙. 1주일 만에 500만원어치가 팔렸다. 콩으로 두부도 쑤어 판다.
이들이 올리는 작품엔 늘 주민 배우가 선다. 부녀회장, 새마을지도자, 파출소장 같은 사람들이다. 만종리극장의 대표작 ‘다녀왔습니다’엔 만종리 농부와 제천에 사는 주부, 직장인이 출연한다. 이 연극에 나오는 배우가 총 7명인데, 3명이 프로고 나머지 4명은 아마추어다. 고추밭 농부인 허범종 씨, KBS 충주방송국에서 9시 뉴스를 진행하는 정지성 아나운서도 만종리극장의 객원 멤버다. 이달 27일부터 다음달 13일까지 ‘단양 여름 만종리 축제’가 열린다. 보통 때는 1주일에 금·토요일 이틀만 공연하지만 축제 기간엔 매일 밤 하루도 빠짐없이 무대가 선다. 만종리 대학로극장은 가을이 오면 ‘밀밭 웨딩’을 시작할 생각이다. 연극과 어린이 체험활동을 연계한 프로그램도 구상 중이다.
단양=FARM 고은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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