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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포럼] 내일보다 오늘 저녁을 즐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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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여유 만끽하자는 YOLO 스타일
개인의 기쁨과 행복이 서서히 퍼진다면
사회가 보다 근사하고 행복해지지 않을까

이주은 < 건국대 교수·미술사 myjoolee@konkuk.ac.kr >



‘바베트의 만찬’이라는 음식 영화가 있었다. 노르웨이의 어느 금욕적인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프랑스의 최고 요리사였던 여자, 바베트가 쫓기는 신세가 돼 온다. 어느 날 그녀는 복권에 당첨되더니 마을 사람들을 초대해 아주 오랜만에 직접 요리를 했다. 최고급 와인이 전채와 메인, 디저트 코스별로 달라졌고 자라 수프, 캐비어가 얹힌 빵과 여섯 가지 소스가 발린 메추라기 등 기막힌 요리들이 나왔다. 황홀한 음식을 먹은 마을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최고로 행복한 기분을 만끽했고 다시 태어난 기분까지 들었다. 그날 바베트는 복권 당첨금을 음식 비용에 몽땅 다 썼다고 털어놓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전 가난하지 않아요. (모두를 감동시킨) 위대한 예술가니까요.”

은근히 주변에 바베트 같은 사람이 늘고 있다. 가령 몇 년간 회사를 다니며 꼬박꼬박 모아둔 목돈을 깨 불쑥 세계 여행을 떠난다거나, 자기의 취미생활에 가진 것 전부를 투입하며 만족해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욜로(YOLO)족’이라고 부른다. 이미 유행어로 자리 잡았지만 잠시 설명을 덧붙이자면, 욜로는 ‘인생은 단 한 번뿐’이라는 삶의 태도다. ‘You Only Live Once’에서 머리글자를 따온 것인데, 캐나다의 음악가 드레이크가 2011년 발표한 노래 ‘더 모토(the motto)’의 후렴구로 쓰이면서 널리 알려졌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욜로족은 내 집 마련, 노후 준비보다 지금 당장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취미생활, 자기계발 등에 돈을 아낌없이 쓰는 성향이 있으며 이들의 소비는 단순히 물욕을 채우는 것을 넘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에 있다는 점에서 충동구매와 구별된다고 한다. 물론 이전에도 욜로와 비슷한 표현들이 있었다. 카카오톡의 상태 메시지로 최고 인기인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자’는 뜻의 라틴어 ‘카르페 디엠’이 한 예다. 17세기 네덜란드 그림의 주제로 자주 다뤄진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이것 역시 인생의 유한함을 강조한다. 모든 것이 늙고 병들고 죽을 운명이니 사는 게 참으로 덧없지 않은가. 그러니 지금 충분히 느끼며 살라는 권유다.

그런데 욜로는 지금의 소중함보다는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에 방점이 찍혀, 내 맘대로 살아보겠으니 상관 말라는 식으로 들릴 때가 있다. 한 푼 두 푼 저축해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 꿈인 사람들에겐 미래에 대한 준비 없이 오늘 하루만 살 것처럼 행동하는 욜로족의 선택이 과연 가치 있는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산업화 세대의 마인드로 보면 욜로는 ‘단 한 번 산다’는 그럴듯한 이유로 무모한 소비를 정당화하는 것 같고 민주화 세대의 시각에서 보면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눈앞의 자기 삶만 중시하는 이기적인 태도로 비친다. 그러나 욜로족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은 개인의 행복이 모여 사회 전체를 복되게 한다고 믿는다. 계속해서 산업화 시대나 민주화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미래를 위해 현재를 버린다거나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 시대가 그 세대에 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이 있다. 이제 사람들은 언제 올지 모르는 근사한 내일 저녁 대신, 당장 오늘 저녁이 있는 나다운 삶을 바라고 있다. 노동과 여가의 개념도 뒤바뀌었다. 욜로족에 여가는 노동하고 남은 자투리 휴식이 아니라, 삶의 존재 이유이자 창조적인 성취를 위한 시간이다. 예술을 사랑하고 문화를 즐기는 인간의 철학이자 라이프스타일이 바로 욜로다. 이 인간형이 바베트처럼 가진 것을 몽땅 쏟아부어 무언가에 몰입하고 그 기쁨이 서서히 퍼진다면, 우리 사회는 더욱 근사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변화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새크라멘토 밸리 지역에 욜로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이 있다고 한다. 미국 서부의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라는데, 호기심에 왠지 한 번 들러보고 싶다. 혹시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면 다른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지닌 나도 욜로족으로 거듭날 수 있으려나.

이주은 < 건국대 교수·미술사 myjoolee@konkuk.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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