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윤 < 한국콜마 고문 >
“문화의 장벽을 넘어서 통용되는 경영개발 방법의 모색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절대적인 합리성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에 따라 가치는 여러 가지로 달라지며/…/ 자기 문화권에서의 합리성은 다른 문화권에서의 합리성과는 다르다.” 저명한 사회학자 헤이르트 호프스테더는 문화환경이 다르면 행위규범 및 가치관마저 달라질 수 있음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본 칼럼의 주제는 ‘중국 문화’였다. 중국인과의 어울림 및 비즈니스 현장에서 필요한 중국 문화를 소개하려 했다. 중국에서의 ‘현지화’를 위한 조언을 하고 싶었다. 글로벌 표준이 하나라면 ‘로컬(지역)’은 다수다. 이 글들은 일반 로컬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중국이라는 로컬’에서의 현지화에 대한 소견이다.
'글로벌 표준'을 용인하지 않아
글로벌 경쟁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표적 슬로건이 있다. ‘think globally, act locally(글로벌하게 사고하고 현지에 맞춰 행동하라)’다. 글로벌 표준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현지에 그대로 가져가면 안 된다. 당연히 ‘현지화’란 필터를 통해 수정하고 변형 및 응용해 현지에 맞는 정책, 전략, 행동요령 등을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따져봐야 할 것이 좀 더 있다. 중국에는 글로벌 표준을 그다지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필자는 중국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입학을 위해 한국의 대학 졸업 및 성적 증명이 필요했다. 나의 상식(어쩌면 글로벌한 생각으로 ‘한글본’이 아닌)에 따라 ‘영문본’을 베이징의 대학에 제출했다. 뜻밖에도 접수처 직원이 “중국어로 번역해서 공증을 받아오라”고 한다. “아니 대학에서 영어 증명본을 안 받아주는 게 말이 되느냐? 영어본은 글로벌 공통이 아니냐?”고 따졌다.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영어가 글로벌 공통이라는 근거가 있느냐?”
우리가 알고 있는 ‘글로벌’이 ‘진짜 글로벌’일까. 대부분의 국가 또는 민족이 인정하고 일정한 정도 합의된 글로벌일까. 우리가 배운, 그리고 지금도 열심히 배우려는 글로벌 표준의 적지 않은 부분은 어쩌면 ‘구미(歐美)란 로컬 표준’에 불과할 수도 있다. 기술이나 제도와 관련해서는 구미의 로컬 표준이 글로벌 표준으로서의 자격이 있고 또 맞는 방향인 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의 제도를 배우고 문화를 수입해 온다.
그런데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제도는 미국이 분명 우위에 있지만 문화는 다른 차원이다. 그 범주는 제도의 그것보다 훨씬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구미의 글로벌 표준을 (어찌 보면 문화마저) 작정하고 좇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한국과 교류하는 구미의 회사들은 한국에서 현지화하기가 ‘비교적’ 수월할 것이다.
본 칼럼은 ‘중국에서의 현지화’에 국한한다고 했다. 중국은 우리가 알고 있는 글로벌 표준을 순순히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한국의 많은 기업이 글로벌 표준을 가지고 전략을 세우고 (협상도 하면서) 중국이라는 로컬 시장에 진입하려 한다. 이는 마치 ‘서구라는 로컬로 사고하고, 중국이라는 현지에서 글로벌을 지향(think locally, act globally)’하는 엉뚱한 외침이 될 수 있다.
중국도 글로벌 표준을 좇는 분야가 적지 않다. 하지만 선별적이다. 우리처럼 무작정 인정하고 적응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이 중화사상이라는 자부심인지 아니면 강대국으로서의 주장인지 모르겠으나, 중국에서 생각하는 글로벌의 속도와 방향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중국에서의 현지화는 아마도 외국 기업이 한국에서 현지화하는 것보다 훨씬 까다로울 것이다.
친구로 여길 때까지 공들여야
한편 중국에서 현지화를 하려는 외국 기업 또는 외국인에 대해 중국인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 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리우스띵 베이징대 교수는 중국에 들어오는 외국 기업에 대한 중국인의 인식은 3단계를 거친다고 설명한다. “갓 들어온 이방인은 손님(客)으로서 대한다. 그러다가 다름(異)에 대해서는 배척하게 되고, (시간이 흘러) 익숙해지면 친구(同類)로 여긴다.” 중국 현지화의 완성은 ‘객→이→동’의 과정을 거치면서 완성된다. 첫 번째 단계에서 “우리한테 매우 우호적이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두 번째 단계인, 다르기 때문에 배척하게 될 때 “처음하고 다르다. 우릴 속인 것이다”라는 판단 역시 너무도 섣부르고 어리석다. 제대로 된 이해를 통해 동류(同類)로 인정받게 될 때 비로소 진정한 현지화가 실현된다.
류재윤 < 한국콜마 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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