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 감독의 '덩케르크'
[ 유재혁 기자 ]
‘덩케르크’는 2차대전 당시 프랑스 북부 덩케르크에 고립된 40만 명의 영국군이 극한 환경에서 탈출하는 과정을 실감 나게 그린 전쟁영화다. ‘다크 나이트’ 3부작과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으로 비평과 흥행에서 모두 성공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이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톰 하디가 주연했지만 대부분 전투기에 오른 모습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관객은 그의 존재감을 별로 인식하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 배우는 말 그대로 가장 중요한 도구일 뿐이다. ‘덩케르크’는 철저한 ‘감독의 영화’다.
영국 병사들이 거리에서 독일군의 총탄에 쓰러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살아남은 한 병사가 도착한 곳은 덩케르크 해변. 수많은 군인이 군함을 타고 영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줄 서 있다. 독일 전투기들이 공습해 그런 영국 군인들을 쓰러뜨리고, 영국 공군기가 출격해 독일 전투기와 싸운다. 그 사이 영국군은 먼바다에 있는 군함을 타야만 한다. 군함은 얕은 해변에 들어올 수 없다. 마침내 그들을 군함까지 실어줄 민간 소형 어선들이 모여든다.
놀란 감독은 여기서 하늘과 바다, 해변 등 세 곳 상황을 교차편집해 보여준다. 어선들은 연료가 바닥나는 하루 안에 임무를 끝내야 한다. 영국 전투기들은 한 시간 내 작전을 종료해야 하고, 해변의 군인들은 1주일 안에 철수해야 살아남는다. 세 가지 상황의 시퀀스들이 교차로 이어지면서 긴장감은 한순간도 풀어지지 않는다. 놀란 감독은 이런 교차편집 방식을 ‘다크나이트’와 ‘인셉션’ 등에서도 극적 효과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썼다.
감독은 이 영화에서 전장의 병사들이 죽는 모습보다는 생존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장면을 집중 포착한다. 침몰하는 군함에서, 바다에 추락한 전투기에서 군인들은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대열에서 영국군은 자국군을 먼저 군함에 태우기 위해 연합군의 다른 나라 군인들을 배제한다. “생존은 원래 불평등한 거야. 생존은 공포이자 탐욕이야”란 한 병사의 대사는 주제를 환기시킨다.
아비규환의 전장에서 군인들은 제정신이기 어렵다. 오히려 어선을 끌고오는 민간인이야말로 용맹스러운 전사들이다. 민간 어선이 바다 위에서 한 군인을 구출한 장면이 이런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놀란 감독은 “관객을 덩케르크 해안이나 전투기 조종석, 혹은 소형 선박 갑판 위에 서 있는 느낌이 들도록 실감나는 영상을 만드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 아이맥스와 65㎜ 카메라로 촬영했다. 1300여 명의 배우를 투입했고, 실제 덩케르크 작전에 참여한 민간 선박 13척과 스핏파이어 전투기를 동원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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