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5·6호기 건설 전격 중단
한수원 이사회 무슨 일 있었나
정부, 13일 이사회 무산되자 경영진 질타
밤중에 이사들 경주 시내 커피숍 소집
14일 아침 호텔에 모여 찬반 격론
노조원들 몰려오자 "표결하자" 결론
[ 김일규 기자 ]
한국수력원자력이 14일 기습 이사회를 열어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를 3개월간 중단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졸속’이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의 사실상 강제 명령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지역주민과 관련 기업, 노동조합 등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몰래 이사회를 열어 ‘날치기’식으로 통과시킨 것은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수원 기습 이사회…무슨 일이
한수원은 지난 13일 오후 3시 경북 경주 본사에서 이사회를 열고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안건을 의결하려 했으나 각계 반대에 부딪혔다. 이사들은 이날 오후 3시와 5시, 두 차례에 걸쳐 이사회장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본사 입구를 봉쇄한 노조원들에게 막혔다. 한수원은 이날 더 이상 이사회를 강행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신고리 5·6호기가 들어설 예정이었던 경북 울주군 주민들과 관련 기업 근로자들은 돌아갔다.
하지만 이사회가 무산된 것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가 불만을 내비쳤고, 한수원은 비밀리에 다음날 오전 기습 이사회를 열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한수원 관계자는 “경영진이 높은 곳으로부터 질책을 당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수원은 밤중에 이사들을 시내 커피숍으로 다시 불러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긴급 법률 검토 끝에 이사 전원이 동의하면 언제든 회의할 수 있도록 규정한 상법 390조에 따라 14일 오전 이사회를 열겠다며 이날 밤 경주에 머물러달라고 통보했다.
이 과정에서 이사회 멤버 간 의견 충돌이 빚어졌다. 특히 상당수 비상임이사는 이사회엔 참석하겠지만 의결까지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날 오전 8시30분 경주 스위트호텔에서 열린 이사회에서도 비상임이사들은 “오히려 신뢰성을 훼손할 수 있다”며 의결에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뒤늦게 기습 이사회 소식을 들은 한수원 노조원들이 호텔로 오고 있다는 얘기에 결국 표결에 참여했다.
오전 10시께 상임이사 6명과 비상임이사 7명 등 13명 중 비상임이사인 조성진 경성대 에너지학과 교수를 제외한 12명이 찬성표를 던져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안건이 가결됐다. 정부가 사전에 내린 중단 결정에 한수원 이사회는 ‘거수기’ 역할만 한 것이다.
◆“신고리 중단 결정 전 과정 졸속”
이날 한수원의 졸속 처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탈(脫)원전 공약을 내놨을 때부터 예고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 4월22일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중단하고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을 폐기하겠다”고 공약했다. 이 공약은 원전 전문가들이 배제된 채 환경론자 중심으로 구성된 대선 캠프에서 설계됐다.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도 탈원전 공약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많다. 자문위원 역시 환경론자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국정기획위는 다만 6월2일 “일단 공사를 중단하고 제반 사항을 점검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3개월간 공론화를 거쳐 시민배심원단에 최종 결정을 맡기기로 결정한 국무회의(6월27일)에서도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산업부는 결국 국무회의 결정에 따라 지난달 29일 한수원에 강제 명령 성격을 가진 협조 공문을 보냈고, 한수원은 기습 이사회에서 공사 중단을 결정했다. 문 대통령의 공약 설계부터 검증, 정부의 의사결정, 이사회 의결까지 모든 과정이 졸속으로 진행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승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신고리 5·6호기 중단 결정 과정의 상당 부분이 법치행정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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