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어와 헤엄치기
요리스 라위언데이크 지음 / 김홍식 옮김 / 열린책들 / 416쪽 │ 1만7000원
[ 최종석 기자 ] 비행기를 타고 가는 중이다. 아무 생각 없이 창밖으로 태양과 구름을 바라본다. 갑자기 날개의 엔진 하나가 커다란 화염을 내뿜는다. 승무원은 조금 문제가 생겼지만 아무 일 아니라고 말한다. 도무지 불안해서 견디지 못하고 항공기 앞쪽으로 걸어간다. 다른 승무원이 자리에 앉으라며 막아선다. 그들을 밀치고 조종실로 달려가 가까스로 문을 연다. 그런데 조종실에는 아무도 없다.
이 이야기는 네덜란드 언론인 요리스 라위언데이크가 묘사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상황이다. 그는 2011년 영국 런던의 금융지구 ‘시티’ 안으로 들어가 200여 명과 이야기를 나눴다. 시티는 증권사와 보험사, 거대 은행이 밀집한 지역이다. 《상어와 헤엄치기》에서 그는 초보자의 관점으로 금융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포착해 나간다. 금융에 대해 일자무식인 기자는 아프리카 오지의 부족을 조사하듯 인류학 현장연구 방법을 이용해 관찰자 입장에서 탐사해간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당시 세계경제를 붕괴시킬 수 있는 지경까지 갔다는 정황을 저자는 여러 곳에서 듣는다. 그는 현장탐사를 통해 이런 지경까지 가게 된 근본 원인을 탐욕이나 오만이 아니라 ‘텅 빈 조종석’으로 묘사한다. 은행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것. 이곳은 완벽히 통제·관리되는 세계가 아니라 매우 불투명하고 무책임한 신념만이 지배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2년 반 동안 투자은행가, 헤지펀드 매니저, 후방 지원부서 직원, 인사 관리자, 해고자 등 다양한 사람을 인터뷰했다. 자신들이 설계한 금융 상품이 얼마나 위험한지, 빈번한 인수합병 과정에서 땜질 처방된 정보기술(IT) 시스템이 얼마나 엉망인지 이야기한다. 1000분의 1초 동안 똑같은 주식을 사고파는 걸 반복하는 ‘고빈도 매매’로 인해 금융계가 얼마나 불투명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도 보여준다.
금융인들이 눈앞의 이익에 쫓겨 일탈하게끔 만드는 시스템도 문제다. 저자는 시티에는 회사 출입카드를 찍었을 때 울리는 경보음을 듣고서야 자신이 ‘잘린’ 사실을 알 정도로 폭력적인 해고 문화가 있다고 말한다. 이런 환경이 트레이더가 위험한 투자에 뛰어들고, 일을 투명하게 처리해야 할 지원부서가 서류를 조작하게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와 같은 상황을 묘사한다. “5분 후에 문밖으로 쫓겨날 수 있다면 사람들의 시야는 5분짜리가 된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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