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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계 고질병 된 '집안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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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협회, '진단서 상한액 1만원' 집행부 책임론 커져
한의사협회, '침술 진료비 인하' 놓고 협회장 퇴진 요구 거세
약사회, 약사회관 운영권 관련 회장 '1억 수수' 논란

수익 줄어든 의료계 현실
협회 내부 비민주적 운영 내·외부 갈등 키우는 요인



[ 이지현 기자 ]
의사 한의사 약사 등을 대표하는 보건의료단체장들이 시련의 계절을 맞고 있다. 해당 단체의 이익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퇴진 압박을 받고 있어서다. 3개 보건의료 대표 단체장들이 동시에 퇴진 위기를 맞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의약품 처방조제권, 의료기기 사용권 등 직종 간 해묵은 갈등이 수년째 해결되지 않고 있는 데다 의료계 전반의 경영난이 겹치면서 ‘단체장 책임론’으로 번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협회장 퇴진’ 목소리 높아져

서울시한의사회는 지난 6일 “김필건 대한한의사협회장은 거취를 분명히 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달 12일 김 회장이 회원게시판에 침 진료비 하락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다. 한의사들은 환자가 많은 침술 등의 진료단가는 내려가고 환자가 거의 없는 관장 등의 진료단가가 올라간 것을 문제삼고 있다. 이달부터 건강보험 진료비 산정 방식이 바뀌면서 한의사들은 월 10만~20만원가량 손해를 보게 됐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한 한의사는 “발목을 삔 환자의 침 시술은 건당 100원, 안면마비 환자는 500원 정도 시술비가 내려갔다”며 “가뜩이나 어려운데 한의사회 집행부가 정부와의 협상을 잘못했다”고 했다.

내부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은 한의사뿐만이 아니다. 의사들은 의료기관 진단서 상한액을 1만원으로 정한 보건복지부의 ‘의료기관 수수료 항목 및 금액에 관한 기준’ 고시를 두고 집행부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병원에 따라 최대 10만원까지 받던 진단서 수수료를 1만원 이하로 낮춘 것 등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전국의사총연합 등 의사단체는 지난 7일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 등 집행부가 책임을 지고 즉각 총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약사회 상황도 녹록지 않다. 대한약사회는 오는 18일 임시 대의원총회를 열고 조찬휘 대한약사회장의 거취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9일에는 지역 약사회장들이 모여 조 회장의 사퇴를 결의했다. 조 회장은 회원 동의 없이 신축 약사회관의 일부 운영권을 1억원에 매매했다는 이유로 사퇴 요구를 받고 있다.

한정된 건보재원, 갈등 커지는 보건의료계

보건의료계의 극심한 내부 갈등은 경영악화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의사 한의사 약사 등 보건의료 전문직 수가 늘면서 의료기관 수익성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도 갈등에 불을 지핀 요인이다. 미용시술 등을 하는 병의원을 제외하면 국내 의료기관은 수익의 90% 이상을 건강보험 재정에 의존한다. 매년 정해진 건강보험 재원을 의사, 약사, 한의사, 치과의사 등에게 나눠주는 구조이기 때문에 이들 단체 간 갈등이 잦다. 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싼 의사-한의사 간 갈등, 의사-약사 간 처방권 갈등 등이 끊이지 않는 것도 건강보험 재원을 누가 많이 확보하느냐와 무관치 않다.

이용균 HM&컴퍼니 대표컨설턴트는 “보건의료계는 치료 건수를 늘려 수익을 늘려왔다”며 “환자 증가세가 멈추면서 같은 직종 내에서도 환자 쟁탈전이 심해지고 있다”고 했다.

젊은 세대 요구 못 따라가는 의료계

일각에서는 보수적 성향의 보건의료단체들이 젊은 세대의 요구를 따라가지 못해 불거지는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협회장 사퇴를 요구하는 의사 한의사 약사단체는 ‘협회장의 무능과 비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문제로 지적했다. 협회장이 각종 현안을 회원들에게 공개하고 회계 등을 투명하게 했다면 갈등이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보건의료계 관계자는 “의대 약대 등의 입학 커트라인이 높아지고 전문대학원이 등장하면서 이전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하고 훨씬 많은 비용을 들인 전문직종이 배출되지만 이들의 수익은 예전만 못하다”며 “단체마다 기득권을 쥐고 있는 잘나가는 선배 세대와 후배 세대의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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