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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만 있으면 돈 걱정 없다"…스타트업 투자액 10년새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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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실리콘밸리 에스토니아를 가다
(2) 에스토니아에 꽂힌 글로벌 벤처 투자자들



[ 유창재/이동훈 기자 ]
“여러분이 투자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들이 스카이프에 버금가는 성공 스토리를 쓸 수 있도록 에스토니아 정부가 힘껏 돕겠습니다. 더 많은 에스토니아 기업에 투자해 주십시오.”

지난 5월24일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 중심가에 있는 국무총리 공관 ‘스텐복 하우스’. 위리 라타스 총리가 샴페인 잔을 높이 들며 건배사를 하자 해외 각국에서 탈린을 찾은 50여 명의 벤처투자자도 환호하며 잔을 부딪쳤다.

미국 벤처캐피털(VC) 더컴바인의 케이피 레디 창업자, 영국 VC 아토미코의 테디 왈디 대표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글로벌 벤처업계의 ‘큰손’들이 총출동했다. 라타스 총리는 발트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테라스로 투자자들을 안내해 기념사진을 찍는 등 ‘극진히’ 모셨다.

중국 투자자들의 해외 투자 자문을 제공하는 미국 투자은행인 KC의 팡 추 최고경영자(CEO)는 “핀란드에 있는 동료가 ‘유럽에 투자하려면 꼭 에스토니아에 가봐야 한다’고 권유해 방문했다”며 “완벽한 디지털 인프라와 정부의 강력한 스타트업 육성 의지에 놀랐다”고 말했다.


◆몰려드는 스타트업 투자금

글로벌 벤처투자업계의 이목이 에스토니아에 쏠리고 있다는 사실은 지난 5월25~26일 탈린에서 열린 스타트업 포럼 ‘래티튜드(Latitude) 59’에서도 확인됐다. 이날 총리공관에 초대된 해외 벤처투자자들도 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탈린행(行) 비행기에 몸을 실은 이들이다. 주최 측에 따르면 27개국에서 175명의 해외 투자자가 참가했다. 핀란드, 독일, 영국 등 유럽 투자자는 물론 미국 실리콘밸리와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사우디아라비아 VC들도 포럼 티켓을 샀다.

에스토니아 스타트업들은 글로벌 VC로부터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고 있다. 2006년 569만유로(약 75억원)에 그쳤던 스타트업 투자금은 지난해 1억343만유로(약 1400억원)로 10년 동안 1700% 넘게 급증했다. 국민 1인당 스타트업 투자액은 약 10만원으로, 1인당 약 2만1000원꼴인 한국에 비해 다섯 배가량 많다.

이는 해외 투자자들이 에스토니아 스타트업의 지분을 사들인 금액만 합산한 수치다. 해외 기업이 에스토니아 스타트업을 인수한 사례를 포함하면 투자금은 훨씬 늘어난다. 올초 미국 벤처기업 무브가이즈는 텔레포트라는 도시 정보 스타트업을 인수했고, 지난해에는 세계 1위 곡물회사인 미국 몬산토가 모바일 농장 관리 솔루션 업체 바티탈필즈를 사들였다. 앞서 2015년에는 일본 최대 온라인 쇼핑몰 라쿠텐이 에스토니아의 온라인 가상 피팅룸 업체 피츠미를 인수했다.

하이디 카코 에스토니아 엔젤투자협회 대표는 “에스토니아의 스타트업 투자금은 경제 규모에 비해 매우 큰 편”이라며 “대다수 스타트업은 성장 가능성은 크지만 당장 수익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각각의 투자금액은 전통 기업에 비해 적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시장으로의 확장성에 주목

해외 투자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에스토니아 스타트업들의 경쟁력은 ‘글로벌 확장성’이다. 처음부터 인구 130만 명에 불과한 내수시장보다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아 기업 가치 1조원 이상의 ‘유니콘’이 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스카이프(인터넷 화상전화), 트랜스퍼와이즈(개인 간 국제송금 서비스), 스타십테크놀로지(음식 배달 로봇 제조) 등 ‘세계 최초’ 타이틀을 단 스타트업이 에스토니아에서 잇따라 태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디지털 마케팅 대행사 컨버탈의 타비 레이드마 창업자는 “안정적인 내수 시장에 안주하는 일부 미국과 영국 스타트업 과 달리 에스토니아 창업자들의 DNA에는 국경을 초월해야 한다는 인식이 각인돼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문화도 해외 투자자들이 에스토니아 스타트업을 선호하는 이유로 꼽힌다. 그러다 보니 창업 분야도 △핀테크(트랜스퍼와이즈, 모네세) △빅데이터(가드타임, 펀더빔) △인공지능(스쿠퍼, 프랭크, 웹스) △바이오테크(바이오탭, 셀린테크놀로지) △신소재 부품(스켈레톤테크놀로지) 등으로 다양하다.

회사를 매각하고 다른 사업에 다시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문화도 투자자들에겐 매력 포인트다. 다른 지역보다 빨리 자금을 회수할 수 있어서다.

펄코 코사 에스토니아 스타트업 정책자문관은 “에스토니아에선 해외에서 성공한 서비스를 모방한 ‘카피캣’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민간 투자를 유도한 정부의 벤처 투자

에스토니아의 스타트업 투자가 처음부터 활발했던 건 아니다. 10년 전만 해도 에스토니아 창업가들은 투자금을 모으는 게 가장 어렵다고 호소했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스타트업에 직접 자본을 투입하기로 하고 2007년 ‘에스토니아 개발펀드(EDF)’를 설립했다. 스마트캡(SmartCap)이라는 자회사를 세워 투자를 담당하도록 했다.

스마트캡은 괜찮은 아이디어를 내놓은 스타트업에는 사업 계획만 보고 투자를 집행했다. 조건은 단 하나. 민간 투자를 유치한 기업에 한해 50 대 50의 매칭 투자를 해줬다. 바이탈필즈, 피츠미 등이 스마트캡의 투자를 받아 성장한 스타트업들이다. 마틴 랜드 바이탈필즈 창업자는 “처음에는 고개를 갸우뚱하던 해외 투자자들도 정부가 50%를 투자한다고 하니 믿고 투자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올초 스타트업 투자 기능을 민영화하기로 하고 지난 5월 스마트캡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민간 VC인 테라벤처스로 이관했다. 앞으로 정부는 펀드오브펀드 방식의 간접 투자만 하기로 했다. 민간 VC가 운용하는 자금이 8억유로(약 1조원) 규모로 늘어난 데다 초기단계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엔젤 투자도 활성화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빌자르 루비 경제개발부 차관은 “에스토니아는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스타트업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며 “민간 VC의 펀드매니저들이 ‘이제 정부는 필요 없으니 시장에서 떠나라’고 요구해 민영화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루비 차관은 “언젠가 민간 VC들이 ‘간접 투자도 필요 없다’고 요구하면 정부는 완전히 시장을 떠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모태펀드를 비롯한 정부 출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VC의 41%(지난 4월 기준)에 달하는 한국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한국 정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추가경정예산 중 1조4000억원을 모태펀드에 추가 출자한다는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

■ 90% vs 20%

에스토니아와 한국 스타트업들이 지난해 유치한 투자금액 중 외국인 비중. 에스토니아 스타트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 비율은 2006년 0%에서 지난해 89.7%로 높아졌다. 한국은 20% 수준(스타트업 정보 제공 업체 플래텀)이다.

탈린·타르투=유창재/이동훈 기자 yoocool@hankyung.com

후원: 삼성언론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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