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연명의료 보류와 중단 (대법원 2009월 5월21일 선고, 2009다17417 전원합의체 판결)
2009년'김 할머니 사건'…환자 호흡·심장 멈춰 '식물인간'
가족이 인공호흡기 제거 요청…병원서 거부하자 법정으로
대법원 판결로 기준 제시…환자 의식·생체 기능 회복 불가능
짧은 시간내 사망 요건 갖추면 연명의료 중단할 수 있다고 판단
김천수 <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 >
2009년 ‘김 할머니 사건’을 보자. 대학병원에서 검사받던 환자의 호흡과 심장이 멎었다. 폐암으로 의심돼 검사를 받던 중 발생한 출혈이 그 원인이었다. 환자의 뇌가 심하게 위축됐고 파괴됐음이 확인됐다. 일정 시간 산소 공급을 받지 못해 야기된 뇌손상이 원인이라고 추정됐다. 스스로 호흡할 수는 없지만 뇌사 단계는 아니고,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며 의식을 회복할 가능성이 5%가 안 된다는 게 주치의 견해였다. 일단 부착된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청했지만 거부당한 환자의 보호자는 법원에 그 제거를 명하는 판결을 청구한 것이다.
대법원장인 재판장을 포함해 13인의 대법관 가운데 9인의 다수의견에 따라 대법원은 아래와 같은 요건이 구비되면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수의견이 제시한 요건은 환자 상태에 관한 객관적 요건과 환자의 의사(意思)라는 주관적 요건으로 정리할 수 있다.
연명의료 중단 요건
우선 환자 상태에 다음과 같은 세 요소가 있어야 한다. 첫째, 의식 회복이 불가능해야 한다. 환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상태라면 그에 따르면 되기 때문이다. 둘째, 생명 관련 생체기능의 회복이 불가능해야 한다. 셋째, 환자가 짧은 시간 내에 사망할 상태여야 한다.
주관적 요건으로서 환자가 연명의료의 시행이나 계속을 거부해야 한다. 그런 거부 의사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두 가지가 있다.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미리 의료인에게 밝힌 ‘사전의료지시’에서 확인할 수도 있지만 그런 문서가 없는 경우 ‘추정’을 통해 연명의료 거부 의사가 확인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말하는 사전의료지시가 인정되려면 환자가 의사를 표현할 능력이 있을 때 의사의 설명을 듣고 진지하게 결정한 것이어야 한다. 또 이런 점을 의료인을 상대방으로 해 환자가 직접 작성했거나, 진료 과정에 의료인이 환자의 뜻을 받아 적은 서면이어야 한다. 이런 사전의료지시가 없으면 환자가 연명의료를 거부한다고 추정돼야 한다. 이런 추정은 객관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환자의 평소 가치관이나 신념 등 환자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관 다수의견은 이 사건 환자인 김 할머니에게 이상의 요건이 구비됐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연명의료를 중단하기 위한 요건에 대해 다수의견과 견해를 달리하는 대법관 2인의 반대의견과 또 다른 2인의 별개의견이 있었다. 반대의견은 생명에 직결되는 진료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소극적으로, 그 진료나 치료를 거부하는 방법으로는 행사될 수 있어도 이미 환자의 신체에 삽입·장착된 인공호흡기 등의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치료를 중단하는 것과 같이 적극적인 방법으로 행사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봤다. 그러나 환자가 돌이킬 수 없는 사망 과정에 진입했다면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하고 치료를 중단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했다.
내년 2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위 대법원 판결이 계기가 돼 관련 법률이 2016년 2월3일 제정됐다. 그 법률이 바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다. 이 법률 가운데 연명의료에 관한 조항들은 2018년 2월4일부터 시행된다.
이 법률에 의해 시행을 보류하거나 중단할 수 있는 연명의료는 제한적이다.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만이 이 법률에 따라 보류하거나 중단되는 연명의료다. 나머지 연명의료에 대해서는 위 대법원 판결이 의료현장의 기준이 될 것이다. 이 법률에 의해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는 환자는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아니하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에 임박한 상태여야 한다. 위 대법원 판결과 마찬가지로 ‘사망의 임박’을 요구한다.
이런 객관적 상태에서 환자가 의사를 표현할 수 없으면 연명의료의 시행을 포기하기 위한 주관적 요건은 크게 세 방법으로 충족된다. 첫째, 사전에 작성된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환자의 의사다. 이런 문서로는 일정한 절차에 따라 환자가 작성해 등록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진료 중 환자의 요청으로 담당의사가 일정한 절차에 따라 작성해 등록한 ‘연명의료계획서’가 있다. 둘째, 이런 문서가 없으면 가족 2인 이상에 의해 환자가 평소에 표현한 의사를 확인함으로써 주관적 요건을 충족시킨다. 이 경우 환자는 19세 이상이어야 한다. 셋째, 이 두 방법으로 주관적 요건이 구비되지 않아도 환자 가족 전원의 동의로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을 수 있다.
‘사망의 임박’ 전제는 재고돼야
연명의료란 ‘자연스러운 사망(natural death)’ 과정에 인공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위 대법원 판결이나 이 판결을 바탕으로 제정된 연명의료결정법은 사망이 임박해야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하겠다는 태도다. 이는 잘못이다. 위 판결에 따라 김 할머니는 인공호흡기가 제거된 2009년 6월23일부터 자신의 호흡으로 생명을 유지하다 2010년 1월10일 자연스러운 사망에 이르게 된다. 인공호흡기 없이 6개월18일간 생존하다 사망한 김 할머니가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시점에 사망에 임박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김 할머니는 자연스러운 사망을 원한 당신의 뜻에 따라 자기 호흡으로 남은 삶을 살다 사망한 것이다. 사망의 임박이라는 전제는 연명의료의 보류나 중단에 고려돼서는 안 된다.
한편 환자의 뜻을 확인할 수 없다고 해서 가족 전원의 동의로 연명의료를 중단하도록 한 연명의료결정법 태도는 수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19세 미만이라도 판단 능력을 가지고 평소에 표현한 생각이 환자 가족들의 확인을 통해 존중되는 방향으로 연명의료결정법이 수정돼야 할 것이다.
생명을 위한 생체기능을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환자에게 인공장치를 부착해 목숨만 연장시키는 연명의료를 시행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판단 기준은 없었다. 2009년 대법원은 소위 ‘김 할머니 사건’에서 연명의료의 시행 여부에 관한 기준을 제시했다. 인공호흡기를 인위적으로 제거해 환자가 사망한 1997년의 소위 ‘보라매병원 사건’에 대한 2004년 대법원 판결(살인방조죄 유죄 판결) 이후 살인죄 처벌이 두려워 의료인들은 연명의료장치를 법원 결정 없이 제거하는 것을 거부해 환자 쪽과의 갈등이 계속됐다. 그 갈등의 연장선에서 환자 가족들이 의료기관을 상대로 요구한 인공호흡기 제거를 명한 것이 2009년 대법원 판결이다.
나아가 이 판결을 바탕으로 제정된 법률은 이제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렇지만 이 판결의 태도나 법률 적용에 문제점들이 남아 있어 연명의료에 관한 사회적 논의는 계속될 필요가 있다.
■ 연명의료 중단…존엄사…소극적 안락사
연명을 위한 의료 기술 및 장비가 발달함에 따라 ‘뇌 기능의 영구적 정지’(뇌사)와 ‘심장 기능의 영구적 정지’(심장사) 사이의 시간적 간격이 넓어졌다. 심장사 시점을 지연시켜 주는 연명의료를 보류하거나 중단하면 심장사 시점은 앞당겨진다. 이 점은 종래의 안락사와 같다. 죽음에 이르는 극심한 고통의 시간을 독극물 주입 등 적극적인 행위로 단축시켜 심장사 시점을 앞당기는 것만을 의미한 종래의 안락사를 이제는 ‘적극적 안락사’라고 하면, 연명의료의 보류 및 중단을 ‘소극적 안락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심장사 시점을 지연시키기 위해 연명장치를 보기 흉하게 몸에 부착하고 무의미하게 생존하는 모습은 인간의 존엄에 반한다는 점에서, 연명의료의 보류와 중단은 존엄을 지키면서 죽음을 맞이하도록 한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존엄사’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심장사 시점을 앞당긴다는 결과의 측면이나 인간 존엄이라는 가치 판단의 관점이 아니라 단순히 사실적 측면만을 묘사해 ‘연명의료 중단’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요즘 추세다. 연명의료 중단에는 그 시행 자체를 처음부터 착수하지 않는 것, 즉 ‘연명의료 보류’도 포함한다.
김천수 <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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