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리티(Originality)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
복원(Restoration)
“여기가 아니면 갈 곳이 없는 사람들”
[편집자 주] 누구나 저마다 취향이 있다. 개인 취향에 옳고 그름은 없다. 반사회적인 취향만 아니라면 배척당할 이유도 없다. 좋고 싫음에 무슨 거창한 이유가 있겠는가. 취향존중, 다름을 인정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시민의 미덕이다.
시대에 따라 취향에 심취한 이들을 부르는 말은 다양하다. ‘쟁이’, ‘마니아’, ‘덕후’ 등. 한 가지에 취해 몰두하는 모습은 매한가지다. 여기, 취향을 업으로 삼은 이들이 있다. 돈보다 적성을, 안정감보다 만족감을, 해야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사람들. ‘취향저격’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중인 이들을 만나보자.
유튜브에 운동화 복원 영상을 올리는 안재복(32)씨는 운동화 광(狂)이다. 2015년 9월부터 신발 관리 용품 업체를 운영 중이다. 직접 수입한 제품 리뷰를 통해 운동화 관리 비법과 복원 과정을 영상으로 공개하고 있다. 20년 넘은 농구화부터 올해 발매된 명품 운동화까지. 파손 및 변색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영상에 담는다.
복원가는 기본 5만원. 공임과 재료에 따라 가격은 유동적이다. 저렴한 운동화 한 켤레 가격에 맞먹지만, 한 달 복원 의뢰만 70여 건에 달한다.
“같은 운동화를 네 번씩 고친 분도 있어요. 복원비가 새 제품 가격에 육박하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그 분은 아시는 거죠.”
안 대표는 초등학생 시절 친형이 산 ‘조던 농구화’에 반한 뒤 지금까지 운동화에 빠져있다. 20년 간 쌓아온 운동화에 대한 지식 덕에 운동화 마니아의 취향을 꿰뚫 수 있었다. 자신을 찾는 고객의 요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이유이기도 하다.
안씨가 사업에 뛰어든 계기는 오롯이 운동화였다. 시장에서 운동화 판매에 비해 관리는 취약했다. 판매 기업의 애프터서비스도 소홀했다. 복잡한 정식 수리 절차는 덤이었다. 오래된 제품일 수록 더욱 그랬다. 불편함을 느끼는 소비자가 갈 곳은 없었다. 관리 용품을 개인이 사용하기도 어렵다. 성능 검증도 어렵고 제대로 된 사용법도 없어 답답한 실정이다.
영상을 통해 복원과 관리 노하우를 알리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복원 영상마다 노하우를 배워간다는 댓글이 넘실댔다. 현재 그의 손을 거친 운동화를 찾는 단골만 1000여명에 달한다.
안씨는 운동화 시장이 커진 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냈다.
“최근 180만원짜리 명품 운동화가 자주 들어와요. 유명 가수가 신어 유명해진 제품이죠. 그런데 로고가 잘 떨어져요. 가격이 성능을 보장하진 않는거죠.”
그는 무조건 비싼 신발보다 ‘제값’하는 신발의 가치를 알리고 싶었다. 의뢰가 들어오는 제품도 2000년대 초반에 생산된 운동화가 가장 많았다. 때 묻고, 갈라진 운동화가 새 신처럼 복원돼 새제품 못지 않은 멋이 났다. 안씨는 영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운동화 관리에 신경쓰길 바랐다. '영업비밀'과도 같은 복원 비법을 공개하는 이유다.
안경섭(41) 대표는 피규어와 동고동락하고 있다. 작년 8월부터 피규어 복원 업체를 운영 중이다. 페인트가 벗겨지고, 깨지고 부러진 피규어도 그의 손을 거치면 다시 본 모습을 되찾는다. 빗발치는 문의로 한 달에 20건 이상 일거리가 쌓이기도 한다. 한 제품을 4일에 걸쳐 고칠 때도 있다. 주문을 더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다.
그에게 피규어는 취미였다. 2014년까지 애니메이션과 스톱모션 영상 업계에 몸담았다. 당시엔 영상을 만들다 여유가 생기면 피규어를 만들었다. 영상 소품을 만들다 남은 재료가 있어 수월했다. 잘 만들어진 피규어를 사진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
그 때부터 도색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용돈벌이로 생각해 조금씩 칠해주다보니 어느새 업이 되어있었다. 맡겨지는 제품도 가지각색이다. '스태추(동상)'의 경우 100만이 넘는 제품도 많다. 1000만원짜리 전신 스태추도 작업했다. 이제 작업실에는 도색을 배우려는 수강생이 함께 하고 있다.
안씨가 처음부터 복원에 호의적인 건 아니었다. 공장에서 출시된 완제품이나, 타인 작품에 손을 대기 꺼렸다. 그럼에도 안씨가 복원을 하는 이유는 “여기가 아니면 갈 곳이 없는 사람들” 있어서다. 꽁꽁 싸맨 피규어를 들고 KTX를 타고 오는 손님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의뢰받은 작업의 전·후는 물론, 과정도 촬영해 기록한다. 손님이 얼마나 애지중지 여기는지 알아서다. 파손된 부위에 본드를 칠하고, 사포로 갈고, 다시 페인트로 칠한다. 정교함이 뒷받침돼야만 가능한 작업이다. 그 정교함에 손님은 안심과 믿음으로 보답한다. 안 씨는 "잘 고쳐진 제품을 받아든 손님의 행복한 표정을 볼 때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안씨도 과정에서 보람을 느낀다. 작업의 시작과 끝만 보여주는게 아니라, 전반을 보여줌으로서 작업의 가치를 알리는 재미다.
그는 기자에게 "피콜로 팔 하나 칠하는게 얼마나 번거로운지 아냐"고 물었다.
부러진 팔뚝을 본드로 붙이고, 질감과 색깔이 각기 다른 수십개 부위를 꿰맞추고, 같은 색으로 칠해야한다. 좋아하지 않으면, 시작도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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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김민성, 연구= 이재근 한경닷컴 기자 rot011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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