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우 기자 ]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기업인 한국관광공사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개척한 사업모델과 비슷한 서비스를 내놓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스타트업 업계에선 “스타트업을 지원해야 할 정부, 공기업이 되레 세금으로 민간 업체와 경쟁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공기업 신사업, 스타트업과 판박이
한국관광공사는 지난 4일까지 조달청 나라장터를 통해 ‘해외개별관광객(FIT) 방한 유치 활성화를 위한 콘텐츠 및 관광코스 개발’과 ‘FIT 온라인 포털사이트 구축 및 운영사업’ 등 두 건의 용역 사업 참여자를 모집했다. 사업비는 각각 2억원, 7억2500만원 등 총 9억2500만원이다.
자유여행으로 한국을 찾는 여행객이 늘어나는 것에 맞춰 이들을 위한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를 구축하는 내용의 사업이다. 한국관광공사의 사업제안서를 보면 이 웹사이트는 FIT용 관광상품과 테마별 관광콘텐츠, 추천 여행코스, 온라인 프로모션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비슷한 사업을 펼쳐온 스타트업이 반발하고 있다. 현재 트레이지, 펀타스틱코리아, 트래볼루션(서울트래블패스) 등의 스타트업들이 외국인 개별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를 하고 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사업을 담당하는 한국관광공사 FIT유치지원팀 관계자는 “스타트업의 상품도 관광공사 웹사이트에 등록해 홍보를 도와줄 것”이라며 “FIT 대상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의 이익을 늘릴 수 있는 방향으로 사업을 하겠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정부의 사업 협력 제안도 받지 못했다고 반발했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지난해 가을 한국관광공사가 미팅을 요청해 만났는데 비슷한 서비스를 만들려고 하니 참여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며 “기존 사업을 포기하라는 얘기여서 거절했고 그 뒤로 협력 제안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사업이 제대로 될 것인지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상당히 방대한 포털 사이트를 만드는 사업인데 구축 기간이 3개월밖에 되지 않는다”며 “정부 주도로 짧은 시간에 만든 사이트가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민간업체 지원하는 데 집중해야”
정부, 공기업이 스타트업의 사업 모델을 모방한 서비스를 내놓아 논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개인 간 중고거래의 피해를 막기 위해 사기범의 전화번호, 계좌번호 등을 확인해주는 스타트업 더치트는 경찰청이 자신들의 사업 모델을 그대로 베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06년 사기정보 공유 사이트 더치트를 개설했고 2012년 법인 설립 뒤 사업 범위를 확장했다.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은 2014년 더치트와 비슷하게 사기꾼의 연락처 등을 확인할 수 있는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 ‘사이버캅’을 내놨다. 김화랑 더치트 대표는 “경찰 측과 대화하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2014년에는 문체부 산하 한국문화정보원이 인디밴드의 공연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 ‘인디스트릿’과 똑같은 서비스를 만드는 사업을 발주했다가 논란이 일자 철회하기도 했다. 올해 3월에도 경기교육청이 자체 제작한 교사 업무용 메신저를 배포해 이 시장 1위 사업자인 지란지교컴즈가 반발했다.
지난 4일에는 유영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정부가 배달 앱을 만들어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한 국회의원의 질문에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해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미래부는 즉각 “의미가 잘못 전달됐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처럼 정부와 공공기관이 민간 기업의 사업영역을 침해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지원과 진흥, 규제 개선 등 민간 기업들이 문제 없이 활동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을 조성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프라이머의 권도균 대표는 “규제 완화에 소극적인 정부가 이제는 자체 사업에까지 나서면서 스타트업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직접 사업을 할 것이 아니라 잘하는 민간 업체를 지원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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