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털어주는 기자
[ 김보라 기자 ] 두툼한 피자에 콕콕 박혀 있는 검은색 링. 이름도 맛도 잘 모르는, 그저 피자 토핑 중 하나였던 어떤 채소. 올리브 이야기입니다.
올리브 맛을 제대로 알게 된 건 얼마 안됐습니다. 낯선 도시로 여행을 가면 가장 먼저 하는 일. 전통시장을 가보는 일이지요. 지중해의 햇살 좋다는 도시를 여행하며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올리브는 우리의 김치라는 것을.
연한 녹색, 진한 녹색, 짙은 갈색, 검은색, 쪼글쪼글하거나 끝이 뾰족하거나 동그란 모양…. 올리브의 색과 모양은 각양각색입니다. 담그는 방식도 제각각. 올리브 오일, 소금, 말린 토마토, 치즈, 레몬, 마늘, 매운 고추, 허브를 취향껏 섞어 만든답니다. 손맛에 따라 완전히 다른 맛이 탄생합니다. 집집마다 김치 맛이 다르듯 말이죠.
처음엔 통올리브를 먹는 것 자체가 낯설었습니다. 떫고 짭조름한 데다 시큼한 맛, 풋내 나는 열매를 쉴새없이 먹어치우는 지중해 사람들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더 신기한 일은 여름만 되면 그 떨떠름한 녀석이 자꾸 생각난다는 겁니다. 시원한 화이트 와인과 함께.
올리브 ‘입덕’을 한 뒤에야 알게 된 스토리도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아테네를 얻기 위해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싸웠던 일이 있지요. 제우스는 시민들에게 더 좋은 선물을 하는 신이 도시를 갖자고 제안했답니다. 포세이돈이 삼지창으로 땅을 찔러 거대한 샘을 만들었습니다. 아테나는 그 샘 옆에 올리브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고 합니다. 아테네 시민들의 선택은 올리브나무. ‘신이 내린 선물’이라는 별명도 이때 붙었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수제 절임 올리브를 만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서울 종로 익선동 골목을 헤매다 반가운 집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올리브 절임 가게’라고 쓰여 있는 작은 가게 ‘올리브리사’. 온통 핑크색으로 무장한 주인장 리사 언니는 1년 전 ‘올리브가 너무 좋아서’ 가게를 냈다고 합니다. 제품은 여섯 가지.
최고급 가에타 올리브에 엔초비, 페퍼론치노와 조선마늘로 맛을 낸 ‘카사블랑카’, 고소한 과육의 카스텔 베트라노 올리브, 육쪽 조선마늘과 페퍼론치노가 들어간 ‘모던타임즈’, 치즈와 선드라이 토마토, 블랙올리브가 만난 ‘사브리나’, 씨없는 카스텔 베트라노 올리브에 로즈마리, 레몬 제스트가 들어간 ‘로만 홀리데이’ 등. 영화 좀 본 사람들에겐 반가운 이름들이지요.
LP판 돌아가는 작은 공간에서 매일 올리브와 씨름하는 그녀. 단골손님의 미각이 보통 이상이라 최상급 재료를 고집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적어도 ‘올리브 덕후’들에게 리사 언니는 핑크빛 아테네 여신이 따로 없습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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