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형주 기자 ] 문재인 정부가 세제개편을 통해 근로소득세 면세자 축소에 나설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26일 “근로소득 면세자 축소는 중장기 과제로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근로소득자의 46.5%(2015년 소득 기준)가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이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국민개세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지난해 조세재정연구원에 면세자 비중 축소 방안 연구를 의뢰했다. 최근엔 공청회를 열어 소득세 공제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가 당장 소득세 공제 축소를 밀어붙이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불과 2년 전 ‘연말정산 파동’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서다. 2013년 세법 개정으로 이듬해 소득세 공제방식이 바뀌면서 2015년 초 상당수 직장인들은 소득세 부담액이 대폭 증가한 연말정산 결과를 손에 쥐게 됐다. 당시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되는 등 강력한 조세저항에 부닥친 정부는 서둘러 보완 대책을 내놓고 공제 항목 등을 다시 늘렸다.
일단 중장기 과제로 미뤄지긴 했지만 면세자 축소는 계속 논란이 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복지지출 증가 등 늘어나는 재정 수요를 감안하면 소득세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세원 확대와 국민개세주의 원칙을 고려할 때 면세자를 축소해야 한다는 얘기다. 반면 면세자 비중만을 근거로 소득세제를 손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반론도 있다. 면세자 비중이 높은 것은 그만큼 저소득층이 많다는 것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저소득층 소득을 늘려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저소득층 소득이 늘어나면 세제개편 없이도 자연스럽게 면세자 비중이 줄어든다는 논리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찬성 - 근로소득자 46.5%가 면세 '불합리'…'넓은 세원'위해 비과세·감면 축소를
복지 등 재정수요 증가 감안하면 면세자 줄여야
헌법 제38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납세는 근로의 의무, 국방의 의무, 교육의 의무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주민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행해야 할 의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전체 근로자의 46.5%가 근로소득세 면제자다. 애덤 스미스에서 시작해 그 이후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바람직한 조세의 특성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공평성(equity)이다. 조세와 관련한 공평성은 소득 등 경제적 여건이 비슷한 사람들은 같은 세금을 부담해야 하며(수평적 공평성), 동시에 경제적 여건에 차이가 난다면 그에 따라 세금 부담도 달라야 한다(수직적 공평성)는 의미다.
만일 경제적 여건이 같은 두 사람이 납부하는 세금 액수에 차이가 난다면 누가 봐도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각종 세금에 적용되는 비과세와 감면이 이런 불공평 유발의 주된 원인이다. 물론 다양한 비과세나 세금 감면은 나름대로 도입 이유와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이 사회적으로 상당히 중요하고 바람직하다면 이런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피한 측면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조세와 관련해서 지향하는 중요한 목표는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다. ‘넓은 세원’은 예외 없이 거의 모든 납세 대상자들이 세금을 부담한다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낮은 세율’은 세금 부과를 통한 정부 개입이 민간 부문의 경제활동을 왜곡시켜 비효율을 유발하는 것을 가급적 줄이려는, 즉 조세에 의한 초과부담(excess burden)을 줄이려는 노력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세원은 고정한 채로 세율만 낮추면 정부가 필요한 만큼의 세수를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세원을 넓히는 것이 병행돼야 한다.
결국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의 추구는 효율성과 형평성을 모두 아우르는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특정 개인이나 가구에 대한 비과세와 감면을 축소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소득이 적은 사람들에게 면세 혜택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에게는 면세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적용할 수 있다. 정부는 자녀 유무, 연령과 취학 여부 등 가구가 처한 여건에 맞는 맞춤형 복지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세금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동체 구성원이 꼭 내야 하는 회비 성격을 가지고 있다. 여건에 따라 회비를 줄여줄 수는 있겠지만 아예 면제하는 것은 개인에게나 그가 속한 공동체에나 바람직하지 않다.
결론적으로 면세자를 축소하는 것이 충분한 세수의 확보, 효율성, 공평성 등 바람직한 조세의 요건들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올바른 방향이다. 지금과 같이 사회복지에 대한 가파른 수요 증가, 성장동력 회복을 위한 각종 재정 수요 등을 감안할 때 면세자 축소는 더욱 필요하다.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저항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것은 정치 지도자들의 역량과 확고한 의지에 달려 있다.
박완규 <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
반대 - 면세자 비중 축소는 증세 위한 편법…저소득층 세금 부담능력 고려해야
국민 세금부담, 부가세 등 간접세까지 따져봐야
2013년 32.2% 수준이던 근로소득자 중 면세자 비중이 2014년 47.9%까지 증가하면서 근로소득자 면세자 비중을 조절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2014년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중이 전년에 비해 15%포인트 이상 급증한 것은 2013년 말 증세를 목적으로 소득세제를 개정하면서 세율 인상 대신 근로소득 관련 특별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편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특별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면서 세액공제율을 12~15% 수준으로 결정했다. 이는 1200만원을 초과하는 과세표준에 적용되는 소득세 법정세율 15~38%보다는 낮은 수준이지만, 1200만원 이하에 적용되는 법정세율 6%보다는 두 배 이상 높았다. 그러므로 특별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할 경우 이전보다 면세자 비중이 증가한다는 점은 조세전문가라면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더구나 이후 표준공제 인상과 같은 보완 조치는 면세자 비중을 더 크게 증가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특별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할 때 논리는 소득양극화 해소를 위해선 세율 조정보다 세액공제 전환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근로소득이 상대적으로 많은 계층의 세 부담은 증가했고, 면세자 비중 또한 커졌다. 소득 재분배 관점에서 보면 이런 결과는 바람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제 와서 면세자 비중이 과다하다는 이유로 면세자 그룹에 속한 낮은 근로소득자들의 세 부담을 높이겠다는 것은 ‘증세’를 위한 또 다른 편법이라 할 수 있다.
소득세제를 면세자 비중을 기준으로 고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소득세제는 수평적 공평성과 수직성 공평성을 적절하게 실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소득세는 개인의 궁극적인 소득에 대한 인적과세로서 납세자의 개인적 형편을 고려한 부담 능력을 과세표준으로 측정함으로써 수평적 공평성을 실현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측정한 과세표준에 적정한 누진세율을 적용해 수직적 공평성을 실현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상적인 면세자 비중’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가정하고 이를 맞추기 위해 납세자의 개인적 형편을 역산해 소득세제를 고치려 드는 것은 소득세제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기능인 ‘응능과세의 원칙(부담 능력에 따라 과세해야 한다는 원칙)’을 왜곡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과다한 면세자 비중을 축소해야 한다는 대표적 명분으로 제시되는 것이 소위 ‘국민개세주의’다. 하지만 이를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은 반드시 소득세를 내야 한다는 의미로 보는 것은 올바르지 않은 해석이다. 국민개세주의 판단은 부가가치세, 주세, 유류세 등 간접세를 포함한 모든 세금을 대상으로 논의해야 할 주제다. 간접세 비중이 높은 한국의 세수구조를 고려할 때 소득세 면세자 비중이 높다는 이유로 국민개세주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보는 시각은 동의하기 어렵다.
높은 면세자 비중에 대한 정책적 접근은 그 원인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그 원인이 저소득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면 세제가 아니라 노동시장과 재정정책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지금의 높은 면세자 비중은 저소득층 비율이 높다는 점에 기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단기적 면세자 비중 감소를 위해 섣불리 소득세제를 변경한다면 조세형평성 측면에서 예상치 못한 왜곡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김갑순 < 동국대 회계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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