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 색깔이 다른 눈동자란 뜻의 ‘오드 아이(odd-eye)’는 한경닷컴 기자들이 새롭게 선보이는 코너입니다. 각을 세워 쓰는 출입처 기사 대신 어깨에 힘을 빼고 이런저런 신변잡기를 풀어냈습니다. 평소와 조금 다른 시선으로 독자들과 소소한 얘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탈(脫)원전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본격화됐다. 지난 27일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잠정중단 발표가 계기다. 정부는 공론화위원회 논의를 거쳐 5·6호기 최종 존폐 여부를 시민배심원단이 결정하도록 했다. 그러자 원자력 관련 학과 교수들이 단체로 우려 목소리를 냈다. 졸속 결정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그 과정에 전문가도 배제됐다는 이유에서다. 교수들은 앞서 이달 1일에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탈원전은 ‘가야 할 방향’이다. 이론의 여지가 거의 없다. 세계적 추세가 그렇다. 멀게는 독일, 가까이는 대만이 국가 차원에서 탈원전을 선언했다. 관건은 원전의 ‘현실적 대안’이 있느냐다. 전문가들은 이 대목에서 이견을 나타냈다. 신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이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원전을 포기했다가는, 전력수급 차질을 비롯해 경제 전반에 미치는 부정적 파급 효과가 크다고 봤다. 한 마디로 “이상적 아마추어리즘은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맞다. 원전 문제는 여론만으로 풀 수 없다.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해서 교수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명서가 아닌 ‘원전 보고서’다. 학자의 설득 방식은 연구를 통한 논리적 입증이어야 한다. 그런데 원자력 전공 교수들의 ‘주장’은 이해당사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의 그것과 상당 부분 겹친다. 수십억 원짜리 한수원 연구용역을 수행하는 교수가 확실한 과학적 근거 제시 없이 앞장서 “탈원전 반대”를 외치면 오해받기 십상이다.
성명에 참여한 200명 가량의 교수 가운데 ‘원전 안전’에 전문성을 갖춘 이가 얼마나 있을지도 의문이다. 당장 학계 내부에서 “원자력 기술에 대한 전문성과 원전 안전에 대한 전문성은 별개”라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탈원전 진영에도 동일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환경과 안전에 대한 정치적 올바름(PC)만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원전을 대체할 신재생에너지의 기술 수준과 이에 따른 비용을 구체적·논리적으로 제시해야 할 것이다.
“탈원전이 우리나라의 고급 원전 기술과 인력을 사장시킨다”는 비판은 절반만 맞다. 가동 원전 안전관리나 사용후 연료 처리, 폐로 해체 등에 그 기술과 인력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을 터이다. 여기에는 ‘물 반 잔’의 비유가 들어맞는다. 신재생에너지가 충분히 성숙된 후 원전을 폐기하자는 주장과, 먼저 원전부터 줄여나가는 노력이 신재생에너지 개발의 촉매가 된다는 주장은 “반 밖에 안 남았다”와 “반이나 남았다”의 양면적 인식과 흡사하다.
파리기후협정 이후의 세계는 빠르게 변화하는 중이다. 신재생에너지는 미래의 선택이 아니라 현재의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다름 아닌 ‘경제성’ 때문에 그렇다는 분석도 나온다. 〈에너지 혁명 2030〉의 저자 토니 세바 스탠퍼드대 교수는 “소비자가 태양광에너지로 전환을 결심하는 이유는 태양광이 친환경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탈원전 논란이 이 대열에 뒤처지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좀 더 긴 호흡으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이 같은 맥락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탈원전 찬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주장을 넘어 입증할 수 있는 진정한 ‘전문가’가 필요한 이유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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