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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CEO & Issue focus] "구찌가 한물 갔다고? 천만에" 디자인·매장 확 뜯어고쳐 '스냅챗 세대 명품' 탈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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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 부활 이끄는 마르코 비자리 CEO

컨설턴트로 사회생활 시작
명품 가방 보테가 베네타 맡아 글로벌 금융위기때 도약 이끌어
가장 럭셔리한 브랜드로 올려놔

프랑스 케링그룹 회장의 호출
매출 2년 연속 곤두박질
전임 경영자 회사 떠나자
"전성기 영광 재현하라" 특명

'사진 SNS 세대' 취향 저격
500개 글로벌 매장 다 바꾸고
스냅챗으로 패션쇼 홍보
작년 매출 12% 끌어올려



[ 이상은 기자 ]
2014년 12월 프랑수아 앙리 피노 프랑스 케링그룹 회장은 홍콩의 한 호텔에서 한 남성과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구찌, 보테가 베네타, 생로랑, 발렌시아가, 알렉산더매퀸 등 19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케링그룹은 매출 124억유로(약 15조8100억원), 영업이익은 19억유로(약 2조4200억원, 2016년 기준)를 내는 ‘명품의 본가’다. 직원은 4만여 명에 이른다.

피노 회장에겐 풀어야 할 숙제가 있었다. ‘낡은 이미지’를 쇄신하는 일이었다. 특히 대표 브랜드 구찌가 문제였다. 젊은 층 상당수는 구찌를 어머니나 할머니 세대 브랜드로 여겼다. 역사가 96년에 이르는 만큼 자연스러운 인식이기도 했다. 매출은 2년 연속 감소세였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던 프리다 지아니니가 구찌 CEO를 맡고 있던 남편 패트리치오 디 마코와 함께 회사를 떠나는 등 악재도 이어졌다.

피노 회장은 “구찌가 패션 아이콘 자리를 되찾을 방법을 찾으라”고 그에게 지시했다. 1990년대 구찌 전성기를 이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톰 포드 시절과 ‘다른 스타일로, 그러나 그 정도 수준의 영광을 재현하라’는 구체적인 요구가 이어졌다. 피노 회장이 선택한 인물은 이탈리아인 마르코 비자리(54). 케링그룹 산하 보테가 베네타를 급성장시킨 주역이었다.

컨설턴트 출신 혁신가

비자리는 1986년 전략컨설팅회사 액센추어에서 컨설턴트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93년 가방 등으로 유명한 만다리나덕 관리자로 옮기면서 패션업계에 뛰어들었다. 2004년까지 만다리나덕에 머물다가 프랑스 파리 마리테프랑수아저버로 넘어가 1년간 근무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두각을 보인 것은 2005년 케링그룹에 영입되면서부터다. 피노 회장은 그의 경영자 자질을 알아보고 스텔라매카트니의 최고경영자(CEO) 겸 대표로 발탁했다. 아시아 지역 경영전략을 짜는 것이 주요 업무였다.

2009년엔 명품 가방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의 CEO 겸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다. 명품업계에도 찬바람이 불어닥쳤다. 하지만 그는 가격을 바꾸지 않았고, 보테가 베네타의 베테랑 장인들을 해고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보테가 베네타는 2010년 전년 대비 이익이 27% 늘어났다는 실적을 발표하며 회복을 선언했다. 경쟁 업체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 시기에 오히려 보테가 베네타를 ‘가장 럭셔리하고 선망하는’ 브랜드로 바꿔놓았다는 평을 받았다.

1966년 설립된 보테가 베네타는 역사가 오래된 다른 브랜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 인지도가 낮은 편이었다. 비자리는 그러나 ‘인트레차토’라고 불리는 특유의 짜임을 부각하고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장인의 손기술이 들어간 점이 강조되면서 소비자들은 이 브랜드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했다. 보테가 베네타는 2014년까지 그의 휘하에서 세계 200여 개 매장을 운영하고 연간 수십억달러 매출을 올리는 회사로 거듭났다.

스냅챗으로 패션쇼 홍보

그의 경영전략에 찬사가 쏟아졌다. 피노 회장이 2014년 홍콩에서 그에게 구찌 CEO를 맡아달라고 부탁한 이유다. 비자리는 지난 3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구찌는 패셔너블함을 잃어버렸다”고 잘라 말했다. 1990년대 톰 포드는 한물간 느낌의 가죽 브랜드 구찌를 높은 하이힐과 얇은 레이스의 섹시한 이미지로 재단장했다. 비자리는 ‘누구나 다 아는 브랜드는 꺼리고, 인스타그램과 스냅챗에 사진 올리기를 좋아하는’ 요즘 패션 애호가들의 취향에 맞춰 구찌를 바꿔가고 있다.

비자리는 디자이너가 아니다. 그는 2015년 변화를 주도하기 위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당시 구찌 핸드백 부문을 맡고 있던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발탁했다. 외부 유명 디자이너를 영입하는 대신 그를 발탁한 것은 다소 모험이기도 했다.

모험은 성공적이었다. 두 사람은 빠른 속도로 구찌의 브랜드 이미지를 재건해나갔다. 전 디자이너 지아니니가 날카로운 실루엣의 여성스러운 의상을 선호했다면 미켈레는 일종의 만화경 같은 할머니 스타일의 니트와 과장스러운 주름, 여기저기 부풀린 블라우스와 커다란 안경 등을 과감하게 도입했다.

패션지 보그는 ‘오래된 물건을 파는 빈티지 가게에서 산 옷과 가보로 물려받은 반지’ 같은 스타일이라고 평가했다. 수십억유로를 투자해 500개 구찌 매장을 새로 바꾸고 그룹의 커뮤니케이션 전략도 새로 짰다. 구찌는 명품 브랜드 가운데 처음으로 스냅챗으로 패션쇼를 홍보했다.

빠르고 유연한 회사 지향

과격한 변화였지만 시장은 반응했다. 매출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일회성 손익을 제외한 2016년 매출은 2015년에 비해 12.7% 증가했다. 처음으로 40억유로(약 5조1000억원)를 돌파했다. 비자리는 FT에 미켈레를 임명하기로 한 것이 “마법 같은 일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창의적인 사람들’을 잘 다루는 관리자로 알려져 있다. 비자리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자기중심적이어도 된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그런 디렉터는 아랫사람들에게 소리를 치고 그들을 괴롭힌다”며 “나는 그런 걸 원치 않았다”고 했다. 그는 “창의성의 흐름을 존중하는 문화를 조성하고, 그런 에너지를 추구한다면 직원들이 리스크를 더 감수하려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자리가 선택한 미켈레는 겸손함을 갖춘 인물이다.

비자리는 회사를 ‘빠르고 유연하게’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시장이 너무나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언제나 호기심을 갖고 공부해야 하며, 아주 유연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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